1997년, 대학 새내기였던 양지만(39·사법연수원 38기) 변호사는 낙원상가를 처음 찾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고등학생 때 뒤늦게 접한 록 음악을 직접 연주해보겠다고 무작정 전자기타를 샀다.

“20만원짜리 파란색 국내산 기타였죠. 앰프와 이펙터를 사들고 기숙사에 들어와서 ‘타브악보’를 보면서 기타를 쳤어요.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연주할 수 있도록 기타 어디를 짚는지 표시가 된 악보였죠.”

그렇게 ‘까막눈 악보’로 좋아하던 밴드 ‘그린데이’의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설펐지만, ‘지이잉’ 거리는 전자기타음에 가슴이 뛰었다. 그 날 이후 ‘프로그래머를 꿈꾸던 공대생’ 양 변호사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사법연수원 38기 △울산지법 판사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멘사코리아 고문변호사 △발매곡 ‘A fish on the cutting board’, ‘Big shift’ 정규앨범 ‘One life’ 등
△사법연수원 38기 △울산지법 판사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멘사코리아 고문변호사 △발매곡 ‘A fish on the cutting board’, ‘Big shift’ 정규앨범 ‘One life’ 등

양 변호사는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코딩을 익혔고, 과학고로 진학한 뒤에는 경시대회에 나가서 상도 여러 번 받았다. 당연히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는데, 멋모르고 연주한 기타가 삶에 들어왔다. 다른 어떤 것보다 재미있었고, 평생 이것만 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지만, 확신을 가진 이상 다른 꿈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생계가 문제였다. 군대를 갔다온 뒤 홍대 밴드에도 들어갔지만 제대로 된 음악을 할 수 없었다. 직업이 필요했다. 프로그래머는 자기 시간을 도저히 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전문직이면 일과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아 무모하게 도전한 게 사법시험이었다. “법조문이 프로그래밍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가언명제라고 하나요. ‘이러이러하면 징역 몇 년에 처한다’. 프로그래밍에도 기본은 ‘if’명령어잖아요.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저와 잘 맞았어요.”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았고, 판사에 임관했다. 초임지는 울산이었는데, 주말마다 음악을 하려고 부산을 찾았다. “울산에서는 밴드를 같이 할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점점 음악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판사들에겐 자기 시간, 심지어 건강까지 희생하면서 국가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가치관같은 게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걸 갖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법원을 나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인터넷과 유튜브 동영상으로 익힌 ‘믹싱’과 ‘마스터링’ 기술이 다른 대중음악가들과 교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12년에는 싱글 ‘A fish on the cutting board’를 냈다. 말 그대로 ‘도마 위의 생선’이라는 뜻이다. “어떤 물고기가 욕심을 부려요. 배가 부른데도 먹이를 찾다가 낚시에 걸려서 도마위에 올라가고, 결국은 생선구이가 되죠. 왜 조선시대에도 방 99칸짜리 부자가 한 칸을 더 채우려고 했다잖아요.” 지난해 법조비리 사건이 떠오른다고 했더니 “적당히 해야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적당히는 법을 지키는 것을 말해요. 법을 어기니 탈이 나죠. 그런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걸 보면 통쾌함까지 느낍니다.”

지난해에는 13곡이 들어간 원 맨 밴드 ‘빅 시프트’의 정규 앨범을 냈다. 모든 곡은 영어로 하고, 앨범을 내줄 곳이 없어 발매할 회사를 직접 차렸다. 연주와 노래까지 직접 했다. 장르는 멜로딕 펑크다. 사회 비판을 하되, 멜로디가 좋아야 한다. 앨범 이름은 ‘원 라이프’로 정했다. 지구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태어난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고 보니 ‘아 내가 그렇게 욕심부리면서 살 필요가 없었는데’ 후회하는 내용이다.

변호사가 된 뒤로는 즐겁다. 욕심내지 않고 딱 음악을 할 수 있을 정도만 돈을 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사는 게 목표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음악을 만들면 그자체로 만족하는 게 90% 이상입니다. 누가 알아주고, 내 음악을 많이 듣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좌영길 기자/


jyg9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