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자녀 배려해 붙잡지 않는 부모들 - 송편은 떡집에서, 차례음식은 나눠하고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추석 명절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직계가족은 물론 친척들이 함께 모여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낸 뒤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이제 추억 속으로 희미해지고 있다. 기성세대들 사이에선 아쉽고 섭섭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지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명절의 참뜻만 실현한다면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반응도 나온다.

주부 김경희(64) 씨는 올해 결혼한 아들에게 “이번 추석엔 새 신부까지 포함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자”고 말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요즘 누가 송편을 직접 빚어서 차례를 지내냐”는 아들은 “떡집에서 우리가 송편을 맞추고 부침개를 만들어갈테니 어머니가 다른 제사 음식을 준비하시라”고 했다. 갈비찜 등 몇가지 음식만 함께 만들어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자는 것.

김 씨는 “내가 시집 왔을 때만 생각해 너무 옛날 소리를 했나 싶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명절은 가족이 모여 이것 저것 맛있는 것을 해먹고 대화도 나누자는 의미인데 너무 간소화되는 것 같아 섭섭하다”고 아쉬워했다.

가족과 친척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어 추석 명절을 쇠는 모습은 이제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왔다. 바쁜 일상 속이 가족 간의 유대가 옅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형식에 치우치기보다는 가족이 모이는 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헤럴드경제DB]
가족과 친척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어 추석 명절을 쇠는 모습은 이제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왔다. 바쁜 일상 속이 가족 간의 유대가 옅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형식에 치우치기보다는 가족이 모이는 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헤럴드경제DB]

광주광역시에 사는 정모(68) 씨는 이번 추석 연휴가 길지만 특별히 기대가 되지 않는다. 정 씨는 “연휴가 길어서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집에 좀더 오래 머물지 싶었지만 그냥 이번 주말에 잠깐만 들렀다가 빨리 가라고 했다”며 “평소 회사다니랴, 애들 키우랴 힘들 애들 오래 와 있어봐야 힘들다는 생각에 그랬다”고 말했다. 연휴가 긴 만큼 아들 내외도 여행도 가고 자유롭게 보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정씨는 “애들 줄 음식은 내가 준비했다. 추석 분위기는 내야 하지 않겠냐”며 담담히 말했다.

자신이 며느리로서 명절에 겪은 고단함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시어머니들도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이모(56) 씨는 “지난해 추석에 시어머니께서 ‘너는 시액에 자주 안와서 문제’라며 연휴 내내 시댁에 붙잡아 돌아와서 남편과 엄청 싸운 기억이 있다”며 “명절 때 많이 당해서 아들에게는 ‘나중에 너는 명절에 절대 오래 있지 말라’고 말해 왔다”고 했다. 실제로 이 씨의 아들은 지난해 말에 결혼했다. 올해 설에는 아들이 일을 하느라 설날 오전에만 잠깐 들렀다. 이씨는 “시어머니도 지켜보고 있었지만 내가 나서서 빨리 돌아가라고 아들을 채근했다”며 “나도 시어머니 대하기가 어려운데 젊은 애들은 얼마나 어렵겠나”며 아들 내외를 두둔했다. 이씨는 “내가 만약 시어머니가 없었더라면 나도 며느리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었을 것 같아 문득 두렵다”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자녀들이 오래 머무는 것에 연연해하기 보다 긴 연휴를 스스로 즐기겠다는 시부모도 있다.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윤모(62) 씨는 “아들이 결혼하고 몇년 동안은 연휴가 짧아도 이틀 밤을 자고 갔지만 요새는 설날에도 전날 와서 요리 조금만 도와주고 명절 당일 점심만 먹고 처가로 간다”며 “괜히 잔소리하면 집 가는 길에 둘이 또 차에서 싸울 수 있으니 더 있으란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엔 연휴가 기니까 나도 친구들 좀 만나고 놀아야겠다”며 “옛날엔 차례를 크게 지내니 끝나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힘이 없었는데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선 내맘대로 할 수 있어 참 좋다”고 했다.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