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확대, 일자리 창출 어려움 인식 공유에서 시작” -“‘일자리 영향평가제’ 통해 정책 가치 평가 후 시행해야” -“갈등 있더라도 필요한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 게 정부의 역할” -“불필요한 채용 강요, 외려 국민에 손해…일자리 사라질 가능성도”
[대담=전창협 산업투자1섹션 에디터]
문재인 대통령 취임 1호 지시는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다. 문 대통령 첫 외부행사도 인천공항에서 열린 비정규직 간담회를 택했다. 문 대통령이 ‘일자리 대통령’으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도 새 정부가 가장 해야 할 일도 일자리 만들기라는 여론조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 청년들을 N포세대로 이끄는 일자리 부족 문제는 시대적인 과제가 된 것이다.
헤럴드경제 창간기념 인터뷰에 나선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일자리 만들기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것”이란 얘기를 시작으로 “노사관계를 내려놓고 청년 1명이라도 채용하는 데 힘을 모으자”란 말로 마무리하기 까지 두시간 넘는 인터뷰시간 내내 격정적인 톤으로 일자리 만들기에 대한 평소의 지론과 해법을 말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70515 박병원 경영자총협회 회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70515
-새정부의 국정과제 1순위가 ‘일자리’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취임초 행보다 일자리수석 신설 등을 보면 새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후보 시절 공약을 보면 핵심공공 부문 중심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판단되는 데, 어떻게 보시는지?
▶가장 먼저 일자리를 만드는 게 무척 어렵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는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어 정부가 노력하면 일자리가 쉽게 생기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본다.
일자리를 만드는 건 새로운 수요다. 수요가 있어야 고용 창출이 가능해지는데 이러한 수요를 더 이상 국내에서 찾는 것은 무리다. 내수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농업과 서비스업도 90% 가량이 해외 수요인 제조업처럼 해외에서 고객을 끌어와 고용 효과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업과 서비스업도 제조업 만큼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영세 소매점이 어려운 이유가 대형 마트 때문이 아니다. 대형마트의 영업일수를 제한한다고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에 갔는가. 백화점을 찾는 발길도 줄어들었다. 중국 대형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알리바바에서 직구를 하는 시대다. 소비자들도 국제경쟁에 노출돼 있다. 국내 소비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해외 소비를 한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업과 서비스업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내수에 안주하지 말고 나가서 외화를 벌어오라 주문해야 한다. 왜 제조업이 물량의 대부분을 수출하게 됐나. 제조업 종사자가 특별히 더 잘나서가 아니다. 제조업은 과거 시장을 완전 개방해 수입품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수입품과 싸워서도 이기지 못하면 수출 능력이 없다고 당시 정부는 판단했다. 반면 농업과 서비스업은 개방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과감히 개방하되 아낌없는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정부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지 않나?
▶그렇다. 자유무역협정(FTA) 저촉 등의 이유로 지금은 과거 제조업처럼 아낌없는 지원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규제는 모두 풀어주겠다는 의지는 보여야 한다.
단적인 예가 토지다. 우리나라 쌀값 생산비용을 분석하면 토지용역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토지용역대는 땅을 팔아 그 돈을 금융회사에서 굴렸을 때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인데 정부는 이를 쌀 생산비 계산에 적용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땅값이 비싸 국내 쌀 생산비용의 토지용역대가 인건비와 기계 감가상각비 등을 포함한 미국의 쌀 생산비 전체를 넘어간다는 것이다.
중국처럼 토지를 저렴한 비용으로 장기 임대 해주겠단 조건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상황을 국내에서 본 적이 있나? 이걸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땅값을 제대로 치르면 경쟁력 있는 업종을 만들 수 없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70515 박병원 경영자총협회 회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70515
-결국, 투자 환경이 조성돼야 일자리 만들어진다는 얘기?
▶지금까지 말한 모든 문제가 해결돼도 일자리가 곧바로 생기는 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 건 일자리를 만드는 게 이 정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자면, 기업이 투자를 통해 일자리 만들기 위해선 밑천을 대는 사람이 적정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원금을 날릴 가능성까지 감안해 적어도 4~5%의 이익은 나야 비로소 투자를 하고 사업을 벌인다. 이 정도 이익도 보장하지 못한다면 투자도 일자리도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사업이라는 게 자본과 노동만, 둘 중 한 가지만 가지고 되는 것인가? 노동과 자본이 같이 있어야 사업이 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임금을 얼마 이상 주지 않으면 ‘취직 안 하고 말지’라는 수준이 있는 것처럼 자본도 ‘차라리 정기예금을 하고 말지’라는 선이 있다.
-새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나라 국민과 정치인들은 소비자를 위해 어떻게든 가격을 억누르는 게 국민을 위하는 길이란 의식 구조에 지배돼 있다. 그럼 절대로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당장은 소비자들에게 이익으로 보이지만 누군가의 장사를 망치는 일이다.
특히 불필요한 가격 규제는 삼가야 한다. 가격 규제와 일자리는 양립할 수 없는 얘기다. 청년 주거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교 주변에 기숙사를 대거 건설하면 주변 하숙집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 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땅에 저가의 임대아파트를 지으면 부동산 임대사업자들이 문을 닫게 된다.
결국 정부의 정책 목표 실현을 위한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사업을 침해를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2001년부터 지금까지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일자리 영향평가제’ 시행이다. 정부의 정책이 누군가의 생업을 파괴하는지, 이 정책이 과연 시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 등을 판단하자는 것이다. 몇 평 이하의 임대주택만 짓는다든지,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한다든지 말이다.
일자리위원회가 출범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인식을 공유하고,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라면 우리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기성세대의 피해에 대해선 보상을 해주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세대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성세대의 기득권은 놓아야 한다. 갈등이 있다고 해서 변화를 주저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갈등이 있을 때 필요한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래야 일자리가 생긴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70515 박병원 경영자총협회 회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70515
-고용과 관련한 기업이 청년층의 고용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적 책무도 있다는 의견이 많다.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의 1,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엔 국민 상당수의 연금이 들어가 있다. 이는 곧 기업 자본이 국민의 것이란 말이다. 기업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인력을 채용하라는 건 주주들인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다. 오른쪽 주머니를 털어 왼쪽 주머니에 넣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아닌 이런 방식으로는 일시적으론 일자리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본전치기도 안 된다. 점점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떨어지면 그 돈을 해외로 투자할 가능성도 있다. 투자가 해외로 가면 자본의 공급이 줄어들고 일자리 창출도 요원해진다.
이런 식으로 하면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다. 정부가 해야 할 일 안하는 건 참아줄 수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몇 해 전 정부가 우리 국민의 통신요금을 월 1000원씩 깎아주며 통신 3사가 6000억원의 순익 손실을 봤다. 이듬해에 이들 회사들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었겠는가? 요금 1000원을 깎느니 그 돈으로 콘텐츠 사업 투자를 제안했다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됐을 것이다. 푼돈을 목돈 만들어 일자리 확대를 위한 산업에 투자하는 게 경제 운용이지, 멀쩡한 목돈 쪼개 푼돈 만들어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수수료와 요금을 깎는 건 타인의 장사를 망치는 일이다.
-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선 노사 관계도 중요한 데.
▶노사관계는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지금 중요한 건 노사정이 힘을 모아 취업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느냐다. 국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일단 이미 취직한 노동자와 경영자, 각자의 이익은 잠시 잊어야 한다. 일자리위원회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아직 취업이 안 된 젊은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취업시킬지 논의할 때다
정리=박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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