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60ㆍ구속기소)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뿐만 아니라 국무총리ㆍ국정원장ㆍ검찰총장 등 정부 요직 인선안까지 들여다본 정황이 드러나면서 ‘공범’으로 지목된 박 대통령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대기업 강제모금 혐의가 대통령의 검찰 조사거부와 대가성 입증의 어려움으로 뇌물죄 적용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검찰은 정호성(47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최 씨에게 넘긴 기밀 문건만 총 47건에 달한다고 결론내렸다. 문건의 종류도 인선안부터 대통령 일정, 해외순방 계획, 민정수석실의 감찰내용까지 광범위하다.

인선안 관련 문건의 대부분은 현 정부 출범 전후에 집중적으로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정부 초대 장관과 참모 등을 정하는 과정에서 최 씨와 논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주요 인사가 최 씨의 손을 거쳐 나왔다는 항간의 의혹이 전혀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2013년 3월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의 친분을 사칭하는 기업인에 엄중 경고했다는 민정수석실의 보고 문건도 최 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나타나 최 씨가 박 대통령 가족에 대한 정보까지 세밀하게 관리했음을 보여준다.

다량의 외교 문서도 최 씨의 손에 흘러 들어갔다. 유출된 문건에는 3급 기밀에 해당되는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추진안도 들어 있었다. 박 대통령 취임 후인 2013년 3월 6일 일본 아베 총리와 나눈 전화통화 내용과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및 한일 현안 문제를 논의한 내용이 담긴 문건까지 최 씨에게 유출됐다. 같은 해 4월 12일에는 박 대통령이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나눈 통화내용도 최 씨가 받아본 것으로 나타났다.

정 전 비서관은 올해 초까지 최 씨에게 지속적으로 기밀 문서를 건넸다. 2월에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실이 작성한 ‘K스포츠재단 및 더블루K 스포츠클럽 지원사업 전면 개편 보고안’이 최 씨에게 전달됐다.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K는 모두 최 씨가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단체다.

올 4월엔 박 대통령의 멕시코 순방 때 계획된 문화행사 상세 일정이 최 씨에게 흘러 들어갔다. 당시 멕시코 순방 때 ‘문화계 황태자’이자 최 씨의 측근인 차은택(47ㆍ구속) 씨가 선발한 단체가 공연을 펼친 것으로 드러나 특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1차 대국민 사과에서 임기 초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되기 전까지 최 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최 씨는 기밀문서를 올해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나타나 박 대통령의 거짓말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