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조고(趙高, 기원전 258~207년)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진(秦)시대에 살았던 환관이자 정치가이다. 조고는 조(趙)나라 왕족이었지만 나라가 진나라에 멸망 당해 진황궁에서 일한다. 성실한 데다 법에 밝은 덕분에 시황제는 18번째 아들인 영호해(嬴胡亥)의 후견을 그에게 맡긴다.

시황제에게 후계자는 큰 아들인 영부소(嬴扶蘇)였고 그 후견인은 명장 몽염(蒙恬)이다. 진시황 사후 조고는 승상이던 이사(李斯)와 함께 유서를 조작, 호해를 2세 황제로 만든다. 조고는 호해를 황위에 올린 공으로 큰 권력을 얻고 이후 문무의 양대 세력이던 이사와 몽염까지 제거해 권력을 독점한다.

조고는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의 주인공으로 중국 역사상 최악의 환관이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환관정치의 대명사는 역시 십상시(十常侍)다. 십상시란 말은 후한(後漢) 말 영제(靈帝) 때 만들어졌다. 보통 군주의 시호에 ‘영(靈)’이 들어가면 어리석거나 무능한 군주를 뜻한다. 영제도 딱 그 경우다. 후한서(後漢書)에는 십상시들이 많은 봉토를 거느리고, 그들의 부모형제는 모두 높은 관직에 올라,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쓰여 있다. 국정 전반에 간여한 이들의 기본 수익모델(?)은 매관매직이었다. 권력으로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환관들은 어떻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권력을 얻었을까?

후한이 세워진 지 불과 68년이 지난 서기 92년 4대 화제(孝和帝)는 전 황제의 외척이던 두헌(竇憲)을 꺾고 권력을 되찾는 과정에서 정중(鄭衆)이란 환관의 도움을 받는다. 이후 화제의 정치는 정중을 비롯한 측근 환관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화제 이후 어린 황제가 잇따라 등극하면서 권력 공백이 생기고 외척과 환관들이 주도권을 다툰다. 이때 환관들은 외척을 견제하면서 어린 황제들을 옹호한다. 중국 황실에서 황자들은 잠재적인 황위경쟁자다. 새 황제가 등극한 후 제거되거나 무력화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주로 친척보다는 인척이 득세했다. 인척마저 배제됐다면 황제들이 평소 가장 쉽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들은 내시들이다.

외척을 꺾은 내시들의 공을 인정해 8대 순제(順帝)는 환관 19명을 후에 봉하고, 양자를 통한 신분세습까지 허용한다. ‘세습’으로 환관의 권력욕은 더욱 강화되고 세력도 거대해진다. 11대 환제(桓帝) 때 환관 조등(曹騰)의 양자의 아들, 즉 손자인 조조(曹操)가 세운 위(魏)에게 후한은 멸망한다. 조등은 후에 고황제(高皇帝)로 추존되는데, 중국 역사상 유일한 환관 출신 황제다.

물론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 때 정화(鄭和) 같은 유능한 환관들도 있지만, 보통 환관들은 주로 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후한을 이었다는 유비의 촉한(蜀漢)이 무너질 때는 황호(黃皓), 당(唐)나라 말기에는 양귀비(楊貴妃)의 총애를 입은 고력사(高力士)가 등장한다. 명나라는 천계제(天啓帝) 때 위충현(魏忠賢)이 국정을 농단하면서 국력이 급격하게 쇠약해진다.

환관이 국정을 농단할 때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이들 덕분에 권좌에 오른 군주들은 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의지하며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민생은 피폐해 진다. 민란도 발생한다. 조고 때 진승오광(陳勝吳廣)의 난, 십상시 때 황건적(黃巾賊)의 난, 양귀비 때 황소(黃巢)의 난이 대표적이다. 위충현 때도 이자성(李自成)의 난이 일어났다. 국정 농단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경제 이슈인 이유다.

온 나라가 어지럽다. 경제도 어렵다. 민심도 들끓는다. 이미 대한민국은 위기에 접어들었다. 어찌하랴. 그래도 ‘머니스토리’다. 파렴치하게 굳이 투자를 논하자면, 원화・위험자산 매도(short), 달러・안전자산 매수(lon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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