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노영역 생성·확산 동시에 진행, 새 ‘SNG 모델’ 제시

- 저전력 비휘발성 메모리·AI 뉴로모픽 반도체 성능 향상

이번 연구를 수행한 KAIST 연구진. 부얀톡톡 밭조릭 박사, 홍승범 교수, 김승훈 박사과정생.[KAIST 제공]
이번 연구를 수행한 KAIST 연구진. 부얀톡톡 밭조릭 박사, 홍승범 교수, 김승훈 박사과정생.[KAIST 제공]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메모리에 ‘0과 1’의 정보가 새겨지는 찰나, 나노미터(㎚·10억분의 1m)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내 연구진이 정보 저장 영역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동시에 이미 만들어진 영역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정보가 기록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차세대 저전력 메모리와 인공지능(AI) 뉴로모픽 반도체 성능을 높일 핵심 원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KAIST는 신소재공학과 홍승범 교수 연구팀이 전기및전자공학부 조병진 교수 연구팀, 독일 드레스덴 공과대학교(TU Dresden) 연구진과 공동으로 차세대 메모리 소재인 ‘하프늄-지르코늄 산화물(HZO)’의 정보 기록 과정을 나노 수준에서 규명했다고 8일 밝혔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강유전체’다. 강유전체는 전원을 꺼도 내부의 전기적 방향인 ‘분극’을 유지한다. 분극 방향을 바꿔 0과 1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 전원을 꺼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특히 HZO는 기존 반도체 공정에서 널리 사용하는 하프늄 산화물에 지르코늄을 섞어 강유전성을 구현한 소재다. 기존 반도체 제조 공정과 호환성이 높아 차세대 메모리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강유전체에 전압을 가하면 같은 방향의 분극을 가진 나노 크기 영역인 ‘도메인’이 변화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새로운 도메인이 만들어지는 ‘핵생성’과 만들어진 도메인이 주변으로 확장하는 ‘성장’을 구분해 메모리 작동 원리를 설명해왔다.

하지만 HZO처럼 수많은 나노 크기 결정으로 구성된 박막에서는 두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기존 모델만으로 실제 메모리 작동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전압에 따라 도메인이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실제 메모리 소자의 전기적 특성과 비교했다.

그 결과 정보가 기록되는 동안 새로운 도메인이 곳곳에서 계속 생겨나는 동시에 기존 도메인 역시 주변으로 확장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정보 기록 과정에서 핵생성과 성장이 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결과가 게재된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 표지.[KAIST 제공]
이번 연구결과가 게재된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 표지.[KAIST 제공]

연구팀은 이를 ‘동시 핵생성-성장(SNG·Simultaneous Nucleation and Growth) 모델’로 정립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나노 수준의 변화와 실제 메모리 소자에서 나타나는 전기적 작동 특성을 하나의 원리로 연결했다. 단순히 정보가 ‘얼마나 빨리’ 기록되는지를 넘어 기록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확산되는지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SNG 모델을 활용하면 전극과 계면, 제조공정 조건 등을 최적화해 도메인의 생성과 확산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더 빠르고 안정적이면서 전력 소비가 적은 비휘발성 메모리와 강유전체 트랜지스터, AI 뉴로모픽 소자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승범 교수는 “강유전체에 정보가 기록될 때 작은 변화가 곳곳에서 새로 시작되는 동시에 이미 시작된 변화도 주변으로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두 움직임이 함께 정보 기록을 완성하는 원리를 규명한 만큼 더 빠르고 안정적인 차세대 메모리를 설계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에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nbgk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