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 흑자 역대 2위 기록 배경
8월 반도체 수출가격 2배 이상 올라
한은 “9월 통관 수출 굉장히 상승”
6월 497.3억달러 기록 추월 주목
월평균 472억달러면 연간4500억달러 달성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3개월 연속 400억달러대를 이어간 배경으로 반도체 가격 급등이 꼽힌다. 8월 반도체 수출 물량이 10% 증가할 때 가격이 2배 가량 뛰면서 8월 흑자 규모가 역대 2위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9월도 호조세가 지속된 것으로 분석한 가운데, 역대 최대 흑자였던 6월(497억3000만달러) 기록을 넘어 월간 500억달러 흑자 시대를 열지도 주목된다. 여기에 올해 1~8월 누적 흑자는 2792억달러로 지난해 연간 흑자(1231억달러) 규모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이 추세대로면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한국은행 전망치인 4500억달러를 가뿐히 넘길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성욱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8일 오전 ‘2026년 8월 국제수지(잠정)’ 설명회에서 “8월 경상수지 흑자는 계절적 분기 배당 지급에도 상품수지를 중심으로 전월보다 확대돼 3개월 연속 400억달러를 상회하면서 역대 2위를 기록했다”며 “상품수출이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1000억달러를 상회한데다 서비스수지도 개선된 데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8월 경상수지 흑자도 반도체 수출이 이끌었다.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의 설비투자 확대로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가 지속됐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8월 수출액 982억5000만달러 중 47%에 해당하는 466억5000만달러가 반도체 수출에서 나왔다. 반도체 수출은 3개월 연속 400억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가격 급등이 반도체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 유성욱 부장은 “8월 반도체 수출에서 가격 수준이 100% 이상 올랐다”며 “물량도 10% 가까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9월에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더 커질 전망이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9월 수출액은 1209억4000만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83.5% 증가했다. 사상 처음으로 1200억달러를 넘어서며 3개월 만에 역대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유 부장은 “통관수출이 9월에는 굉장히 상승한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9월도 좋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간 4500억달러 달성도 점점 더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한은은 지난 8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연간 흑자 전망치를 기존(2500억달러)보다 2000억달러 높인 4500억달러로 제시했다. 7월 국제수지 설명회 당시 남은 5개월간 월평균 430억달러 안팎의 흑자를 내면 전망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제시했는데, 8월 흑자(461억1000만달러)는 이를 웃돌았다. 8월까지 누적 흑자가 2792억달러인 만큼 남은 4개월은 월평균 427억달러 안팎이면 된다. 9월에도 더 큰 폭의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전망치 달성 가능성도 더 커졌다.
유 부장은 “연간 4500억달러 전망 중 하반기가 2590억달러였다. 8월까지 경상수지 흐름을 보면 전망이 대체로 부합한 수준“이라며 “9월 같은 경우에는 무역수지가 지금 예상을 뛰어넘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연말로 갈수록 수출 집중 효과도 있어서 전망 수준 정도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4분기 기업 주주환원 정책으로 대규모 배당이 예정돼 있는데 외국인 지분이 높은 기업은 그 배당이 본원소득수지 지급으로 처리될 수 있어서 그 부분을 확인해야 할 것”이라며 “최근 중동 분쟁 지속에 따른 유가 변동성 확대 등 하방 요인을 고려할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 행렬에도 최근 증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6월 9000선까지 올랐다가 급락하면서 7월 30일에는 5593.6까지 떨어졌다. 그 이후 소폭 회복했지만 여전히 7000을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하고 있다. 급등락하는 증시에 일각에서는 ‘AI 버블(거품)론’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보면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대표적인 게 환율 흐름이다. 코스피가 급락하고 횡보할 동안 원/달러 환율은 추세적으로 하락해왔다. 한은에 따르면 월평균 원/달러 환율(주간종가 기준)은 6월(1528원) 이후 7월(1488.9원), 8월(1404.4원), 9월(1358.8원) 등 계속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경제 위기가 와서 주가가 급락하면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높아지면서 환율이 오르는 것과는 반대되는 흐름이다. 따라서 주가 하락은 위기의 신호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위기 없이 주가만 빠졌다면 특정 업종에 쏠렸던 기대가 되돌려진 결과일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근본적인 위기보다 회복에 걸리는 시간도 짧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패스파인더 단장은 지난 2일 ‘헤럴드머니페스타 2026’에서 “주가가 내려가면서 달러가 뛰는 건 상관관계, 위기가 와서 달러가 뛰는 건 인과관계”라며 “위기가 오면 주가는 급락하고 달러는 오르지만, 주가가 내려간다고 꼭 달러가 오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 연간 1000억달러 경상수지 흑자를 내면 ‘A+(플러스)’라고 했는데 올해는 7월까지 누적 흑자가 2300억달러다”라며 “유가가 오르는 속도보다 반도체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kimsta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