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병원에 걸어 들어갔던 환자가 ‘오후’에는 싸늘하게 식어서 돌아옵니다. 가족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적금을 깨고, 집을 팔아 마련한 돈은 ‘환자가 왜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쓰입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의료기관의 책임을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의료분쟁은 크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중재 신청(연평균 약 2100건), 민사소송(연평균 약 1000건·보험연구원 연구자료) 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매해 ‘3000건 이상’의 의료분쟁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법무법인 오킴스와 함께 다양한 의료분쟁 판례를 분석하고, 다윗이 어떻게 해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지 톺아보려 합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메디컬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메디컬 생존 게임은 월 2회(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불행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항암제 복용 ‘5일’ 만에 혈압이 상승했다. 이상 증세를 느낀 후 내원한 서울대병원에서는 진료받도록 하는 대신, 예정된 외래진료 예약일에 내원토록 안내했다. 그리고 ‘이틀’ 뒤, A씨는 뇌출혈로 거동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그렇게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서울대병원과 A씨의 인연은 오랜 기간 이어졌었다. 우측 안면마비(1995년께), 고혈압(2000년께), 이상지질혈증·갑상선 종양(2006년께) 및 갑상선암 폐 전이(2016년께), 뇌경색(2015년께), 미파열 뇌동맥류(2015년께) 등으로 치료를 받아 왔다.
가족들도 A씨를 가장 잘 아는 곳이 서울대병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갑상선암 및 폐 전이에 대한 치료도 서울대병원에서 이뤄졌다.
서울대병원은 2019년 9월 2일 A씨에게 6번째 방사선 요오드치료 후 상태를 살폈다. 2020년 6월 17일 찍었던 흉부 CT 검사와 같은 해 같은 달 22일 시행한 PET CT 검사 결과, 폐 전이 병소가 1.7㎝(2019년 12월 9일 CT 1.3㎝)로 커졌다.
A씨에 대한 표적치료제 치료가 결정됐다. 서울대병원은 ▷표적치료제 목적이 완치가 아닌 현상 유지라는 점 ▷표적치료제 넥사바, 렌미바 부작용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효과가 없거나 내성으로 인해 이차 치료제로 인정받을 경우 비급여인 점 ▷부작용 가능성 등을 설명했다.
그렇게 A씨에 대한 ‘넥사바’ 투여가 결정됐다.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는 혈관내피성장인자(VEGF) 수용체 등을 억제하는 티로신키나아제 억제제다. 종양의 신생혈관 형성을 억제하는 작용 기전 자체로 인해 고혈압과 출혈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투약 초기 고혈압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혈압 모니터링과 적극적인 조절이 필수다.
이에 서울대병원은 기존에 항고혈압제 자니딥 0.5정을 복용 중이었던 A씨에게 혈압 상승 시 자니딥 0.5정을 증량할 것을 안내했다. 여기에 추적 관찰을 위한 2020년 7월 27일 진료 예약, 부작용 발생 시 갑상선센터 연락 및 응급실 또는 외래 내원 등 설명도 더해졌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20년 7월 15일, 넥사바 복용 시작 후 5일 만(7월 20일)에 혈압이 상승하고, 머리가 무거운 증상이 나타났다. 2020년 7월 23일 A씨 혈압이 196/120mmHg까지 높아졌다.
그럼에도 서울대병원을 찾았던 A씨에게 간호사는 의사 진료를 받는 대신, 진료 예약일(7월 27일) 방문을 안내했다. 간호사가 측정한 혈압이 150/90mmHg였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A씨는 같은 해 7월 25일 야간 뇌출혈 발생으로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내원했다. 치료받은 후에도 A씨는 거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4년 3월 28일 심부전(갑상선의 악성 신생물에 의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엄마였던 A씨의 마지막은 이렇게 허망했다.
유가족 “의사 진료 없이 귀가시켰다”
A씨 유가족은 서울대병원에 ‘약 3억20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부작용 우려가 큰 넥사바 처방에도 서울대병원이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넥사바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점 ▷부작용 발생 후 병원 방문에도 의사 진료가 없었던 점 등을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A씨 유가족은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넥사바의 부작용 중 혈압상승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A씨가 혈압약 복용 중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혈압측정 및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은 점을 꼬집었다.
더욱이 A씨가 혈압관리를 위해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에서 치료받고 있었음에도, 해당 진료과와 협진도 없었다.
특히 간호사가 병원을 방문했던 A씨에게 의사 진료를 받도록 하지 않고 귀가시킨 점도 지적했다.
A씨가 넥사바 복용 후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고, 두통이 발생한 사실을 서울대병원에 알렸던 만큼, 혈압약과 넥사바 복용량 조절, 넥사바 복용 중단 등 혈압조절을 위한 조처를 해야 했다는 주장이다.
법원, 진료받을 권리 침해만 ‘인정’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이성진) 유가족들의 주장을 모두 물리치고, A씨가 진료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점만 인정했다. A씨 위자료 2750만원, A씨 배우자 600만원, A씨 자녀 4인 각 300만원, A씨 형제 2인 각 50만원 등 서울대병원이 지급할 손해배상액은 4650만원에 불과했다.
법원은 A씨 유가족의 주장을 ▷의료상 과실 ▷설명의무 위반 ▷주의의무 위반 등으로 나눠 판단하고, 이중 간호사가 A씨 병원 방문에도 불구하고 의사 진료 없이 돌려보냈다는 점만 과실로 봤다.
세부적으로 법원은 K협회 의료감정원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및 변론 등을 종합해 A씨 유가족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에게 넥사바 처방을 위해 A씨 혈압을 측정하고, 위험성 평가를 거치며, 순환기내과 협진을 의뢰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의료진은 A씨에게 넥사바를 처방하기 전 순환기내과 진료기록을 검토해 A씨 혈압 상태, 투약하고 있는 혈압약 등 인지하고 있었다”며 “여기에 K협회 의료감정원 감정의 의견도 넥사바 투약 시 순환기내과 협진을 권고하고 있지 않다”고 명시했다.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A씨에게 넥사바를 처방하면서, 넥사바 부작용과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을 설명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주의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인정만 있었다. A씨가 넥사바 복용 후 겪은 부작용에 대해 내분비대사내과 의료진의 주의 사항을 따랐던 게 법원 판단의 기준이 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넥사바 복용 후) A씨가 혈압이 상승하자 혈압약 복용량을 늘리고, 서울대병원 갑상선센터에 알린 것은 내분비대사내과 의료진이 넥사바 복용 시 주의 사항을 고지한 것에 따른 행동”이라며 “전화 상담원 대응도 의료진이 정한 주의 사항에 부합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A씨 유가족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전화 상담원에게 상담 내용을 내분비대사내과 의료진에게 알리고, A씨로 하여금 의사 진단을 받도록 안내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A씨의 진료받을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판단한 데 대해서는 ▷A씨가 스스로 측정한 혈압 196/120mmHg이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제정한 ‘항암제 이상 반응 분류 기준’ 상 중증(Grade 3)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인 점 ▷간호사가 측정한 혈압 150/90mmHg이 측정값이 부정확할 가능성이 있거나 의사에 의한 혈압 재측정 및 문진이 필요했다는 점 ▷넥사바가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는 항암제인 만큼, A씨 혈압 상승 및 기저질환 등을 고려한 투약량 조절 등 의사 검토가 필요했다는 점 등을 짚었다.
법원은 “서울대병원 갑상선센터 간호사에게는 센터를 방문한 A씨로 하여금 의사의 진료를 받도록 조치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조진석 “대화 및 녹취, 원고에 불리할 수도”
조진석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A씨 유가족이 제출한 주치의와 대화 내용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법원이 주의의무 과실을 일부 인정했음에도, 과실과 A씨 사망 간 인과관계를 별개로 판단한 점에 주목했다.
A씨가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뇌경색, 뇌동맥류, 아스피린 복용 등 출혈성 뇌질환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뇌출혈 원인이 넥사바 복용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을 강조한 것이다.
조 변호사는 “해당 사건에서는 A씨 유가족이 제출한 주치의와 대화 내용이 오히려 ‘의사가 진료를 했어도 같은 조치를 했을 것’이라는 인과관계 부정의 근거로 활용됐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의료사고 이후 의료진과 나눈 대화나 녹취는 의료진의 과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내용에 따라서는 원고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증거 제출에 앞서 내용이 손해배상책임 인정을 위한 요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해당 사건에서는 주의의무 과실이 일부 인정됐음에도 인과관계가 부정됐다”며 “의료과오소송에서 과실과 인과관계가 별개의 요건일 뿐만 아니라 ‘의사가 진료했다면 어떤 조치가 이뤄졌을지’ ‘그런 조치가 이뤄졌다면 나쁜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지’ 등 가정적 인과관계 증명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조언했다.
또 “환자에게 나쁜 결과 발생의 위험인자가 다수 존재하는 경우에는 감정의가 ‘여러 요인의 복합적 작용’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쉽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