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적층경쟁 속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 고심

SK하이닉스, 90~98% 이상 수율 전제조건 제시

당초 예상보다 지연…HBM5부터 도입 전망

엔비디아, 단수 낮은 HBM 선택 ‘사양 하향’ 기조

김지훈(왼쪽 세 번째) SK하이닉스 아메리카 시니어 디렉터가 이달 9일(현지시간) 국제 반도체 장비재료 협회(SEMI)가 미국 새너제이에서 주관한 ‘AI 컴퓨팅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SK하이닉스 SNS]
김지훈(왼쪽 세 번째) SK하이닉스 아메리카 시니어 디렉터가 이달 9일(현지시간) 국제 반도체 장비재료 협회(SEMI)가 미국 새너제이에서 주관한 ‘AI 컴퓨팅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SK하이닉스 SNS]

<편집자주>

‘칩칩팹팹(Chip Chip Fab Fab)’​은 AI 시대를 움직이는 반도체 산업을 쉽고 깊이 있게 풀어내는 연재입니다. AI 혁명의 핵심인 ‘칩(Chip)’과 이를 만드는 ‘팹(Fab)’을 잇는 이름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처럼 반도체 산업의 쉼 없는 진보를 담은 표현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기술은 쉽게, 뉴스 이면의 이야기와 산업의 흐름은 깊이 있게 전하며, AI 시대를 이끄는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를 독자들과 함께 읽어갑니다.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제조에 필요한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도입을 놓고 반도체 업계가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최소 90% 이상의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이 확보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HBM을 더 높이 쌓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발열 관리와 양산 안정성을 충분히 확인하기 전에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 반도체 장비재료 협회(SEMI)가 최근 미국 새너제이에서 주관한 ‘AI 컴퓨팅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김지훈 SK하이닉스 아메리카 시니어 디렉터는 패널토론에 참가해 차세대 HBM 전략을 밝혔다.

김 디렉터는 HBM을 12단 이상으로 더 높게 쌓기 시작하면 발열·수율·패키징 측면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며 이 같은 물리적 한계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제품이다. 높이 쌓을수록 데이터 용량과 처리 속도가 향상되는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패키징 난도도 올라가 수율 확보 및 열 관리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SK하이닉스 뉴스룸]
[SK하이닉스 뉴스룸]

HBM이 8단을 넘어 12단, 16단, 20단으로 점점 고단화하면서 업계에서는 하이브리드 본딩이 차세대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고성능 반도체·컴퓨팅 아키텍처 콘퍼런스 ‘핫칩스 2026’에서 20단 이상의 HBM 구현을 위해 하이브리드 본딩을 개발 중인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지금은 열과 압력을 가해 고정하는 열압착 방식의 TC본딩 장비를 활용하고 있다. TC본딩은 여러 개의 D램 사이마다 ‘마이크로 범프’라는 접합 소재를 넣어 전기적으로 연결을 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HBM이 두꺼워지고, 데이터 전송 시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하이브리드 본딩은 마이크로 범프 없이 구리와 구리를 직접 접합하는 방식이어서 갈수록 높아지는 HBM의 전체 두께를 줄이고 고성능을 구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로 떠올랐다.

당초 6세대 HBM4부터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지만 기술 난도에 따른 수율 문제로 인해 지연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7세대 HBM4E 16단 제품 또는 8세대 HBM5 20단부터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이 도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식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고성능 반도체·컴퓨팅 아키텍처 콘퍼런스 ‘핫칩스 2026’에서 20단 이상의 HBM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로 ‘하이브리드 본딩’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 제공]
이재식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고성능 반도체·컴퓨팅 아키텍처 콘퍼런스 ‘핫칩스 2026’에서 20단 이상의 HBM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로 ‘하이브리드 본딩’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 제공]

김 디렉터는 이날 패널토론에서 SK하이닉스의 신중하고 엄격한 접근 기조를 강조하며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실제 도입하기까지 ‘90~98%의 수율’과 ‘3~5년의 수명’은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기준을 낮추면서까지 하이브리드 본딩을 서둘러 도입해 무리하게 HBM 적층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HBM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가속기에 사양이 낮은 HBM 탑재를 검토하는 것도 이 같은 기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내년 하반기 선보일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 울트라’에 HBM4E 12단을 탑재할 계획이었으나 이보다 사양이 낮은 6세대 HBM4 8단·12단, HBM4E 8단부터 넣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D램 공급난으로 인해 HBM4E 12단 물량을 기대 만큼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트렌드포스는 “엔비디아가 궁극적으로 HBM 사양을 낮추기로 결정한다면 D램 적층 단수를 줄이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찍이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를 개발해 선보인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해당 장비를 채택해 차세대 HBM 양산에 나서길 기다리고 있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무쿤드 스리나바산 부사장은 지난달 서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언제 상용화될 지는 타이밍의 문제이다. 고객이 답변할 영역”이라며 “늘 새로운 기술의 변곡점 때마다 그랬듯이 일정 부분 학습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 이슈는 극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joz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