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슨기 작업대에 도무송용 목형이 장착돼 있다. 목형에 심은 칼날을 인쇄물에 강하게 눌러 원하는 모양대로 잘라내거나 접는 선을 만든다. [톰슨]
톰슨기 작업대에 도무송용 목형이 장착돼 있다. 목형에 심은 칼날을 인쇄물에 강하게 눌러 원하는 모양대로 잘라내거나 접는 선을 만든다. [톰슨]

AI·자동화에도 숙련공 손 필요한 인쇄 후가공

목형·압력·종이 상태 따라 결과 달라져

서울연구워 보고서에서 “장인적 손기술” 평가

수요는 계속 있는데 고령화와 인력 수급이 문제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저희 아들도 ‘도무송’을 좀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만난 국내 한 대형 인쇄 공장의 공장장은 인터뷰 중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기술은 AI도 접근을 못합니다. 워낙 섬세하고 예민한 작업이라 직접 사람이 하지 않으면 그 결과물의 차이가 엄청나게 커요”라고 말했다. 그는 공장을 함께 둘러본 뒤 ‘도무송 기장’을 설명하면서 “여기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 저분 월급이 제일 많아요. 그만큼 기술 난도가 높아서 그런거에요”라고 슬며시 귀띔했다.

공장장은 해당 회사 대표도 직원들에게 장난삼아 “나도 도무송이나 좀 배워볼까. 시간만 좀 주어지면 은퇴한 뒤 먹고 살게 도무송이나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당일 방문했던 인쇄 공장에선 과자 상자와 아이스크림 상자가 될 박스용 인쇄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매엽기에서 인쇄돼 나온 상자 종이들은 접히는 상자의 모양에 따라 후가공을 거쳐야 기계에서 박스로 만들 수 있는데, 그 후가공 작업이 ‘도무송’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최소한 10년 이상은 AI도 대체 못할 기술, 그래서 현직 인쇄 공장 공장장도 ‘아들이 꼭 좀 배웠으면’ 하는 기술, 대형 인쇄사 대표도 ‘노후 대비용으로 배워볼까’ 생각하는 기술이 도무송이다.

일반 소비자에게 도무송은 낯설다. 그러나 과자 상자나 화장품 패키지, 둥근 모서리의 카드, 스티커, 각종 종이 상자까지 주변에서 접하는 수많은 인쇄물은 모두 도무송 공정을 거친다. 인쇄된 종이를 직선으로 자르는 일반 재단과 달리 원하는 모양대로 잘라내고, 접을 자리에 선을 내거나 구멍을 뚫는 작업까지 할 수 있다.

‘도무송’의 정식 기술 명칭은 다이커팅(Die Cutting), 한국말로는 타발이나 형상 재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국내 인쇄 현장에산 ‘도무송’이란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말의 유래는 ‘톰슨(Thomson)’에서 변형됐다. 미국의 존 S. 톰슨이 세운 톰슨 머신사가 1909년 내놓은 타발기가 일본에 보급됐고, 일본에서 ‘토무손’으로 불리던 이름이 국내 인쇄 현장에선 ‘도무송’으로 굳어졌다. 일본에서도 같은 방식의 가공을 ‘톰슨 가공’이라고 부른다.

도무송은 인쇄가 끝난 종이를 원하는 모양대로 잘라내는 후가공이다. 쿠키 반죽을 틀로 찍어내듯, 상자나 스티커 모양대로 칼날을 배치한 ‘목형’을 만들어 기계에 끼운 뒤 이를 인쇄된 종이에 눌러 잘라낸다. 인쇄지가 상자용으로 만들어진 경우에는 자르는 선과 접는 선을 한꺼번에 만들고, 목형을 찍어 눌면 필요없는 부분은 잘려 나가고 눌러져야 할 부분은 압력이, 점선이 필요한 부분은 점선이 생겨나는 형태다.

서울 중구 인현동의 한 인쇄소에서 한 인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
서울 중구 인현동의 한 인쇄소에서 한 인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

겉으로 보면 단순한 프레스 작업처럼 보이지만 결과를 가르는 것은 ‘세팅’이다. 종이 두께와 결, 습도, 인쇄 위치, 목형 상태, 칼날 마모 정도에 따라 압력을 다시 잡아야 한다. 미세한 차이는 아직은 사람의 손 외에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 ‘도무송 기술’을 가진 숙련공을 ‘도무송 기장’이라고 부르는데, 최소 경력이 3년이고 경력 채용 때에 따라선 5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도무송 기장이 세팅에 실패하면 종이가 완전히 잘리지 않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눌리기도 하고 접는 선이 터지는 문제도 생긴다. 작업자가 시험 생산물을 확인한 뒤 위치와 압력을 반복적으로 보정해야 하는 이유다. 인쇄업 가운데 기획부터 판형 제작, 콘텐츠 등 거의 모든 부분은 다 자동화가 가능하지만 인쇄 상자에 접선을 내고 눌림 자국을 만들고, 커팅이 쉽게 종이에 압력을 가하는 후가공 ‘도무송’만큼은 여전히 숙련공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2013년 발간한 ‘을지로 인쇄 제조업 집적의 구조와 생활세계 연구’ 보고서에선 도무송에 대해 “장인적 손기술이 필요한 정교한 작업”이라고 분석했다. 인쇄 전 공정의 숙련공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2~5년의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자동화·디지털화가 진전돼도 을지로에서는 기계 작업과 장인적 숙련직이 공존한다는 설명이었다.

도무송의 현재 문제는 수요는 계속 있는 반면, 숙련공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현직 인쇄사 대표가 ‘이거 좀 배우고 싶다’고 말하고, 공장장조차 자신의 아들이 이 기술을 배웠으면 한다고 하는 이유는 수익률이 꽤 높은 시장인 반면 숙련공이 부족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인쇄업계 관계자는 “이 기술은 한번 배우면 평생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익률이 평균 20%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국내 최대 인쇄 집적지인 을지로·충무로 일대에서는 오래전부터 숙련공의 고령화와 후계 인력 부족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최근에는 세운재정비사업으로 기존 인쇄업체의 이전 문제까지 겹쳤다. 서울 중구가 세운지구 인쇄 소상공인을 위한 공공임대산업시설을 2028년까지 조성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산업 기반 약화를 막기 위해서다.

천안의 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에선 톰슨기가 빠른 속도로 종이를 찍어냈다. 종이를 넣고 빼는 일은 이미 기계가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60대는 충분히 돼 보이는 직원이 찍혀 나오는 인쇄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당 회사의 대표가 “은퇴 전에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농담을 건넸던 바로 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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