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금융자산 토큰화 경쟁
신한금융, ‘한국판 비들’ 신호탄
해외기관 수요 확보, 수익률 관건
한투·미래에셋·한화도 참전 채비
글로벌 토큰자산 3년새 34배 성장
한국시장도 6000억~10조원 전망
국내 금융사들이 머니마켓펀드(MMF)와 채권 등 정형 금융자산 토큰화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도 확대 시 시장 규모가 10조원 수준으로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신한금융그룹은 블랙록의 토큰화 펀드 ‘비들(BUIDL)’을 본뜬 원화 MMF 상품 개발에 착수했다. 미래에셋과 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도 관련 상품과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면서 금융권의 온체인 자산 경쟁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원화 MMF를 온체인으로…결제·담보의 ‘첫 레일’=신한자산운용은 원화 단기자산에 투자하는 MMF를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발행하는 ‘K-BUIDL(비들)’의 역외 상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채와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등을 편입한 원화 MMF를 토큰화해 온체인 금융시장에서 결제와 담보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준비자산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K-비들이 벤치마킹한 상품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2024년 출시한 토큰화 펀드 ‘BUIDL’이다. 미국 국채와 환매조건부채권(RP), 현금성 자산 등에 투자하는 비들은 온체인 시장에서 담보와 파생상품 증거금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한자산운용이 첫 토큰화 상품으로 MMF를 선택한 것은 초단기 채권과 현금성 자산으로 구성돼 기준가격 변동이 낮고 수탁·회계·감사 등 기존 금융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온체인 금융시장에서 담보자산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는 판단이다.
이진혁 신한자산운용 이사는 “MMF는 새로 설계해야 하는 내부 통제 요소가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적다”며 “신한은 상품의 규모를 키우기보다 온체인 금융의 기반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K-비들은 기술검증(PoC) 단계다. 실제 상품 출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토큰 발행 기술뿐 아니라 기존 금융 규제를 충족할 수 있는 운영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 신한운용 측은 “(K-비들 출시를 위해서는) 고객확인(KYC),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운영 방식, 보안 감사, 외국환거래법 등 규제 준수를 위한 요건 등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역외에서 발행되는 K-비들에는 해외 기관투자자의 달러 자금이 들어올 예정이다. 국내 금융기관이 이를 원화로 환전하면 신한자산운용이 국채와 통안채 등 단기자산에 편입해 운용한다. 환매 시에는 반대 경로로 이뤄진다.
신한자산운용은 상품 설계와 운용, 내부통제, 규제 준수를 맡는다. 토큰화와 글로벌 유통 과정에서는 글로벌 RWA 플랫폼 플룸과 협력한다. 플룸은 신한자산운용 상품을 이더리움과 솔라나 등 여러 블록체인에 올리고 온체인 프로토콜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신한의 첫 MMF 상품은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와의 협의를 거쳐 배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 기관 겨냥’ K-비들, 수익률 하한선은 4%대=K-비들의 역외 발행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국내와 해외 토큰화 시장의 제도화 방향과 속도가 영향을 미쳤다. 국내는 음원과 미술품, 소형 부동산 등 비정형자산을 리테일에 공급하는 데 집중한 반면 해외에서는 신용자산과 MMF, 국채 등 기관투자자에게 익숙한 상품을 중심으로 토큰화가 이뤄졌다.
최인수 신한투자증권 디지털자산부 부서장은 “최근 국내 STO 정책 방향이 발표됐지만 2단계와 3단계는 시행 일정이 특정되지 않은 채 조건부로 열리는 구조”라고 말했다. 앞서 4일 금융위원회는 내년 2월 기관투자자용 사모 MMF와 채권 등을 시작으로 토큰증권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공모증권과 온체인 결제까지 넓어지는 2·3단계의 시행 시점은 시장과 제도 여건에 따라 정해질 계획이다.
이에 따라 신한금융은 국내 제도가 확대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역외에서 상품을 먼저 발행하고 운용해 활용 사례를 쌓는다는 방침이다. 최 부서장은 “온체인까지 이어지고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는 3단계가 돼야 증권업과 은행업을 포함해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대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역외 시장에서 글로벌 투자자를 끌어들이려면 수익성도 뒷받침돼야 한다. 비들과 프랭클린템플턴의 벤지(BENJI), 온도파이낸스의 USDY 등 해외 토큰화 상품이 제시하는 평균 수익률은 약 4%대다. 원화 MMF형 상품은 이들과 경쟁하면서 환율 변동 위험까지 보완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최 부서장은 “역외에서 사업을 한다면 현시점의 수익률 하한선은 최소 4%대가 될 것”이라며 “환율 등 여러 문제를 상쇄할 수 있는 상품 구조를 만드는 것이 증권사와 은행의 숙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디지털자산 업계 전문가는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단기물로 발행된 채권뿐 아니라 잔존 만기가 짧아진 국채를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며 “한국판 상품 역시 결국 한국 국채와 단기자산에 맞춰 수익률을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원화를 일정 기간 보유할 필요가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K-비들에 대한 투자 수요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기업과 수출입 거래를 하는 해외 기업 등이 원화를 현금으로 보유하는 대신, 토큰화 MMF에 단기 운용해 수익을 얻으려는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MMF·채권 토큰화 경쟁 본격화…“2단계 땐 10조원 잠재력”=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토큰화 금융자산 시장이 2023년 초 약 10억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약 340억달러로 약 34배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토큰화 MMF와 펀드 등 미국 국채 기반 토큰화 자산은 같은 기간 약 1억달러에서 155억달러로 150배 이상 확대됐다.
박소영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국내 (토큰증권) 로드맵 1단계 기간 동안 금융자산의 토큰화 침투율이 0.6% 수준에 도달할 경우 시장 규모가 약 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후 2단계에서 국채와 공모사채, 공모주식 등으로 대상이 확대되면 침투율이 0.1~0.2%에 그치더라도 시장 규모가 10조원 수준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금융사들도 관련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채권과 MMF를 포괄하는 통합 토큰증권 발행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향후 디지털자산 중개와 담보금융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미래에셋그룹 역시 글로벌 자산관리 원(One)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면서 자산 토큰화와 스테이블코인 관련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아직 어떤 자산이 어떤 형태로 담길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맵스(MAPS)는 모든 자산을 아우르는 슈퍼앱을 지향하는 만큼 (토큰화 자산도)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도 시큐리타이즈, 디지털애셋, 캔톤 네트워크 등 글로벌 토큰화 인프라와 협업하고 있다. 특히 아부다비 등 역외 시장에서의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신한운용은 K-비들 외에도 캔톤 네트워크의 한국 내 핵심 노드인 ‘슈퍼 밸리데이터’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한금융은 향후 신한자산운용을 필두로 신한투자증권, 신한펀드파트너스 등 주요 계열사와 연계해 캔톤 네트워크 내에서 폭넓은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시장 확대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분산원장 간 연결성이 과제로 꼽힌다. 박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다양한 원장이 병존할 경우 시장 참여자 사이에서는 유동성 분절과 자산이동성 저하에 대한 논의가 제기될 수 있다”며 “원장 간 연결성과 시장 전체의 상호운용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주요 과제로 부상할 수 있다”고 했다.
또다른 업계 전문가도 “기술적으로는 브릿지를 통해 서로 다른 원장을 연결할 수 있지만 아직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금융사들도 국내외 여러 블록체인 인프라를 동시에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경예은 기자
kyou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