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 시행
정부·의학·법학계 등 발전방향 모색
의료사고 막막한 환자엔 신속한 구제
불안한 의사엔 소신 진료할 의료환경
“좋은 제도로 만드는 것은 이제부터”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내년 5월 시행을 앞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이 의료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는 동시에 의료진이 과도한 형사책임 부담 없이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국조정학회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고려대 법학연구원 분쟁해결센터는 지난 11일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학교 CJ법학관 베리타스홀에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과 발전 방향’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고 14일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보건복지부와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를 비롯해 의학·법학자,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참석했다. 개정법을 마련한 정부와 제도 운영기관, 의료 현장과 법률 전문가들이 법 시행에 앞서 예상되는 쟁점을 공유하고 개선 과제를 살폈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중재 절차를 규정한 법률이다.
발표에 따르면 개정법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민·형사소송에만 의존해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의료감정과 조정을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기관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설명제도를 도입했다.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고 의료감정·조정제도를 강화했으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고위험 필수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의료인의 형사책임 부담을 완화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환자에게는 신속하고 충분한 피해 회복 기회를 제공하고 의료진에게는 예측하기 어려운 의료 결과만으로 형사처벌을 걱정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기존의 민·형사소송 중심 의료분쟁 해결구조가 환자의 피해 회복을 늦추고 의료진의 배상 및 형사책임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러한 구조는 중증·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 현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환자 측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도 있다. 일정한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기관은 사고 내용과 경위, 사후 조치 등을 환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의료인이 설명 과정에서 위로나 공감, 유감의 뜻을 나타내더라도 해당 표현만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인정하는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의료진이 법적 책임을 우려해 환자와의 대화를 피하는 상황을 줄이고 사고 이후 설명과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이날 참석자들은 의료사고를 환자와 의사 간 대립으로만 해석해서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의료행위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고려하면서 피해 구제, 설명, 조정, 사고 보고와 재발 방지를 함께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병현 한국조정학회장(고려대 법학연구원 분쟁해결센터장)은 “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최선을 다한 진료 과정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환자에게는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제공하고 의료인에게는 과도한 형사책임의 불안 없이 소신 있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의료법제의 방향”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선의의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를 형사처벌과 낙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피해구제와 설명·조정, 보고와 학습을 통해 환자 안전의 문제로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유 회장은 “법률은 일단 공포되면 ‘시인의 손을 떠난 시’와 같이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다”며 “입법자의 취지에 학계와 실무의 해석, 현장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구체적인 제도의 모습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는 “좋은 법률을 좋은 제도로 만드는 것은 이제부터”라며 “개정법의 안정적인 시행을 통해 환자는 신속하게 보호받고 의료인은 소신 있게 진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hkim@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