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10조→450조 국무회의 의결

내년엔 체결한도 390조원 더 늘려

원전·조선 등 대형플랜트 무역 보증

최종 금액은 국회 의결 거쳐 확정

“국가 재정 큰 부담으로 작용 우려”

대미투자가 본격화되는 내년 무역보험계약 체결 한도가 사상 처음 700조원 규모로 늘어날 예정이다. 올해 한도 310조원(9월9일 기준)보다 390조원 늘어난 규모다.

전문가들은 대미투자 실행을 앞두고 정부가 무역보험 체결 한도를 급격히 늘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은 무역보험 체결한도가 늘어나는 만큼 국가 보증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9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2027년도 무역보험계약 체결 한도를 700조원으로 의결했다. 올해 한도도 기존 310조원에서 140조원 늘린 450조원으로 조정했다. 최종 한도는 국회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무역보험계약 체결 한도가 한 해 만에 2배 이상으로 뛰는 것은 이례적이다. 연도별 한도는 2014년 225조원에서 2015년 230조원으로 늘어난 뒤 2022년까지 7년간 유지됐다. 이후 ▷2023년 260조원 ▷2024년 270조원 ▷2025년 280조원 ▷2026년 310조원으로 완만하게 증가했다. 올해 한도를 450조원으로 늘린 데 이어 내년에 다시 700조원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무역보험은 원자력발전 등 대형 플랜트 수출 기업이 대외 거래에서 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손실을 보상해주는 제도다.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운영하며 수출입 금융을 제공한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이번 한도 확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3500억달러(약 470조원) 규모의 대미투자 실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유엔 참석 일정에 맞춰 이달 18일 대미 투자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발표한 후 29~30일 22억달러(약 2조9600억원)+알파(α) 규모의 첫 투자금을 미국에 송금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미투자 1호 사업으로는 총사업비 223억달러 규모의 미국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 프로젝트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또 양국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둔 핵심 프로젝트는 대형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등 에너지 사업이다. 이처럼 대형 플랜트 사업에 참여할 경우 대금 미회수 등의 위험을 보전하기 위한 무역보험 등 정책금융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원전 8기 사업비가 협상의 최대 걸림돌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미국 측의 요구를 반영해 한국형 원전 2기를 포함한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대형 원전은 1기당 사업비가 150억달러에 달해 8기 건설이 현실화하면 총 1200억달러가 소요된다. 엔시날 발전소와 원전만 단순 합산해도 1420억 달러로 가용 재원의 71%를 넘어선다.

이밖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까지 얹어지면서 2000억달러 한도 초과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특히 알래스카 사업의 경우 수익성 확보가 불투명해 상업적 합리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미전략투자사업관리위원회에 무역보험공사 사장과 수출입은행장이 정책금융기관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총 투자금이 100이면 자기자본(equity)이 20이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가 80”이라며 “PF 80은 코리아 컨텐츠 범위 내에서 무역보험공사나 수출입은행이 보증을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역보험체결한도 증액은 대미투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정책금융기관이 떠안게 될 위험이다. 무역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체결한도가 증가하면 리스크가 커진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라며 “특히 체결 한도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가 보증하는 위험 노출액(Exposure)이 커진다는 의미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경제 위기나 주요 교역국의 수입 거부, 대형 프로젝트의 연쇄 채무 불이행(Default)이 발생할 경우, 대규모 보험금 지급으로 인해 무역보험공사의 재정이 악화되고 궁극적으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건설비, 인허가 지연 등으로 사업비가 예상보다 늘어날 경우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알래스카 LNG처럼 사업성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까지 투자 대상에 포함될 경우 ‘상업적 합리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대미투자관련해서 환율, 수익률 등 거시적인 측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면서 “유럽, 대만은 대미투자협약을 기업 투자로 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외환보유고 등을 허용해서 하다보면 반도체 사이클이 꺼진 시점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미투자를)서두르지 말고 최대한 버텼으면 좋겠다”면서 “현재 대미투자협상자를 바꾸는 등 대체적인 판을 바꿔서 시간을 늦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배문숙 기자


osky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