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
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

전남광주 대인동 쪽방촌 골목에 냉장고 107대가 들어갔다. 폭염이 본격화되기 직전에는 낡은 에어컨 45대가 새것으로 바뀌었다. 구청 예산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서울과 경기에 사는, 얼굴도 모르는 기부자들이 광주 동구로 보낸 고향사랑기부금이 해낸 일이다. 기부자들은 돈을 내며 사용처를 직접 골랐다. ‘폭염 속 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켜 달라’는 항목이었다.

전남광주 동구는 올해 3월 고향사랑기부금 누적 100억원을 넘겼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이다. 고향사랑기부 플랫폼을 운영하며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일하면서 요즘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동구는 도대체 뭘 한 겁니까.” 질문에는 어리둥절함이 묻어 있다. 그럴 만하다. 동구는 농촌이 아니다. 산과 바다를 낀 것도 아니고, 전국이 아는 특산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시 한복판의 오래된 원도심이 시행 3년 만에 100억원을 모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밀은 없었다. 준비가 있었을 뿐이다. 동구는 제도 시행 초기부터 일본 고향납세 사례를 연구하고, 전담 조직을 꾸리고, 외부 전문가와 함께 모금 전략을 설계했다. 첫해 9억원 남짓이던 모금액은 이듬해 24억원, 지난해에는 64억원이 됐다. 어느 해에도 요행은 없었다. 준비한 만큼 자란 곡선이다.

준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흥미롭다. 특산품이 없으면 만들었다. 남광주시장 상인 열 곳의 먹거리를 답례품으로 지정했더니, 이 점포들에 지난해에만 7억8000만원의 매출이 새로 생겼다. 답례품 예산이 ‘비용’이 아니라 골목상권에 대한 ‘투자’가 된 것이다. 기부자를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한 번 기부한 사람을 일회성 후원자로 흘려보내지 않고 꾸준히 소식을 전하며 관계를 쌓았다. 그 결과 동구 기부자 네 명 중 한 명은 이듬해 다시 지갑을 연다. 구청장은 기부금으로 냉장고가 설치된 쪽방을 직접 찾아 작동 상태를 점검하고 주민들과 차를 나눴다. 기부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몸으로 증명하는 행정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실익과 명분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구조다. 동구 모금액의 42%는 기부자가 사용처를 직접 선택한 지정기부다. 쪽방촌 주민의 여름나기 같은 명분이 앞장서니 기부가 모이고, 모인 기부는 답례품을 타고 시장 상인의 매출로, 다시 지역의 살림으로 돌아온다. 명분 없는 실익은 오래가지 못하고, 실익 없는 명분은 힘이 붙지 않는다. 동구는 그 둘을 한 제도 안에 담아내는 법을 3년에 걸쳐 익힌 것이다.

물론 동구라고 벽이 없는 게 아니다. 기부 건수의 98%가 10만원에 멈춰 서는 전액공제 한도의 문턱은 전국 모금 1위권인 동구조차 넘지 못한다. 그래서 동구는 여러 차례 국회 토론회에 직접 나와 제도 개선을 증언했다. 그 장면이야말로 이 제도의 다음 단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제도가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의 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본 지방정부만이, 제도를 바꿔 달라고 말할 자격과 근거를 갖는다.

고향사랑기부제를 두고 여전히 ‘답례품 경쟁’이나 ‘모금 이벤트’쯤으로 낮춰 보는 시선이 있다. 그 우려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대인동 쪽방의 냉장고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갖춰진 조직과 축적된 데이터, 기부자와의 신뢰를 준비해 온 지방정부는 이 제도를 복지와 지역경제를 함께 움직이는 정책 수단으로 키워낼 수 있다. 다음 100억은 어느 도시에서 나올까. 아마도 준비된 순서대로일 것이다.


th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