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금 991조 돌파, 6월말보다 42조 증가

투자자 예탁금 두달새 35.5조↓…25% 감소

조정 장기화 따른 피로감에 개인자금 이동

기업도 결제대금운용 등 무위험 상품 수요

주식시장 조정이 계속되면서 은행에서 빠져나갔던 자금이 다시 유입되는 ‘역머니무브’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정기예금에 가입에 적극나서면서 예금 잔액은 주가가 치솟기 직전인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 수준을 넘어 선 것으로 집계됐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6일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991조4441억원으로 나타났다. 개인과 중소기업, 대기업의 정기예금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지난해 말 939조2863억원이었던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올해 2월 946조8897억원으로 늘었다가 3월 937조4565억원, 4월 937조1834억원으로 감소했다.

3∼4월 예금 잔액 감소에는 주식시장의 영향이 컸다. 3월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주가가 급락했지만, 종전 협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증시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이에 개인 자금을 중심으로 은행 예금에서 증시로 이동하는 머니무브가 나타났다.

기업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500조4094억원에서 올해 4월 말 501조8875억원으로 약 1조4800억원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 정기예금 잔액은 438조8769억원에서 435조2959억원으로 약 3조5800억원 감소했다.

예금 잔액이 본격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6월부터다. 6월 말 949조3998억원이었던 정기예금 잔액은 7월 말 984조9399억원으로 한 달 만에 약 35조5000억원 증가했다. 6일에는 991조4441억원까지 늘어,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전인 지난해 6월 말 잔액 931조9343억원보다 약 59조5000억원 많아졌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긴축 기조를 시사하면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코스피는 6월 19일 전고점인 9331.55를 기록한 뒤 등락을 거듭했고, 지난달 29일에는 5663.24까지 밀렸다. 이달 7일에는 6258.77로 반등했다.

개인 정기예금 잔액도 6월 말 425조1943억원에서 7월 말 429조4686억원으로 늘었고, 이달 6일에는 430조375억원까지 증가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6일 기준 104조712억원으로 집계됐다. 정점이었던 6월 4일의 139조6948억원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25.5% 감소한 규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8월 들어 주식시장이 다시 살아나고는 있지만, 변동성이 큰 장이 장기화하면서 피로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다시 은행으로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머니부브에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들이 특판 상품을 내놓고 있는 점도 한몫한다”고 말했다.

실제 5대 은행의 정기예금 대표 상품(1년 만기)의 최고금리는 연 3.20%~3.30% 수준으로 7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직전 2% 후반대와 비교해 소폭 올랐다. 주식시장 조정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무위험 상품인 정기예금으로 다시 몰리는 ‘역머니무브’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정기예금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5월 말 509조5869억원에서 6월 말 524조2056억원, 7월 말 555억4713억원, 이달 6일에는 561조4066억원으로 늘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여윳돈을 무위험 금융상품인 정기예금에 적극적으로 예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은 통상 환 헤지를 위한 외환 상품이나 채권, 정기예금에 여윳돈을 분산하는데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리스크는 없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정기예금에 수요가 더 몰리는 분위기”라며 “특히 8월은 내년도 결제 대금을 미리 준비하는 시기이다 보니 절대로 손실을 내서는 안 되는 돈들을 은행에 맡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기예금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은행 입장에선 보다 값싸게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희소식이다. 은행들은 예금이나 은행채 발행을 통해 대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데, 정기예금 등 자체 수신을 통해 끌어오는 편이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잖아도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따라 은행들은 기업 대출을 큰 폭 늘려야만 하는 지상 과제를 안고 있다.

반면 대출 차주에게는 썩 좋은 소식이 아니다. 수신 비용이 늘어나면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인 코픽스 역시 상승하기 때문이다. 시장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코픽스까지 상승하면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 서상혁·박혜림 기자


hyuk@heraldcorp.com
r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