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안 영재소년이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으로
15세 학생과 39세 교사의 사랑…파격 인생사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기존 정치 질서 벗어나 청년·중도층 포섭
높은 실업률, 저성장으로 시름하던 프랑스에 ‘개혁’ 메스 대
일찍부터 유럽 자립 주장하며 “나토는 뇌사 상태” 비판한 ‘문제적 지도자’
러시아 위험성 강조했던 국제정세 판단, 우크라戰으로 확인돼
트럼프 관세 위협에 “무역 바주카포” 주장…‘유럽 자강론’으로 맞서
“유럽 마지막 거물 정치인” vs “오만한 엘리트” 극단 평가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프랑스 솜주(州) 아미앵의 한 사립학교 연극반. 학생이던 15세 소년은 자신보다 24세 많은 교사와 함께 대본을 고치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을 선생님 이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소년의 풋사랑에 주변은 화들짝 놀랐지만 그는 “언젠가 반드시 그녀와 결혼하겠다”며 당차게 말했다. 그리고 14년 뒤 그 소년은 실제로 그 교사와 결혼했고,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이 됐다. 이름은 에마뉘엘 마크롱.
한때 “정치를 끝낸 은행가”, “프랑스 엘리트 시스템이 만든 완성형 인재”로 불렸던 그는 지금 유럽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흔들리는 유럽 질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트럼프 2기 집권으로 들이닥친 미국과의 통상 갈등, 유럽 내 극우 세력의 재등장 등 격변의 시대마다 그는 늘 가장 앞줄에 서 있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무역 갈등 전면에 서며 다시 한번 유럽 강경파의 얼굴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산 자동차 관세 재인상을 위협하자 마크롱은 유럽연합(EU)에 이른바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까지 공개 요구했다.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유럽이 스스로 산업·안보·통상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전략적 자율성’ 구상이 경제·통상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마크롱을 “유럽이 마지막으로 보유한 대형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반면 반대 진영은 그를 “국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만한 엘리트”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그는 프랑스 안팎에서 가장 강한 찬사와 가장 거센 반발을 동시에 받는 지도자다.
분명한 점도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흔들리는 유럽, 러시아 위협의 부상,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확산 속에서 마크롱은 단순한 프랑스 대통령을 넘어 ‘유럽의 방향’을 상징하는 정치인이 됐다는 점이다.
의사 집안의 ‘영재 소년’…39세 교사 사랑한 15세 학생
마크롱은 1977년 12월 프랑스 북부 도시 아미앵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의사였고 비교적 안정된 중산층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역사, 철학에 강한 흥미를 보였고 토론 능력도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외할머니 영향이 컸다. 그는 외할머니와 함께 고전문학과 정치 이야기를 접하며 성장했고, 훗날 외할머니와의 대화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마크롱은 가톨릭계 명문 사립학교 라 프로비당스 재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 시기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훗날 아내가 되는 브리지트 트로뇌(현 브리지트 마크롱)이다.
브리지트 마크롱은 1993년 당시 프랑스어·라틴어 교사였고, 결혼해 세 자녀를 둔 상태였다. 두 사람은 학교 연극 작업을 함께하며 가까워졌고 결국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당시 마크롱은 15세, 브리지트는 39세였다.
이 관계는 프랑스 사회에서도 큰 충격이었다. 마크롱 부모는 아들을 파리 학교로 전학시키며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마크롱은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언젠가 반드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결국 2007년 결혼했다. 지금도 프랑스 정치권에서 가장 논쟁적인 개인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마크롱은 이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규범을 깨는 인물이라는 강한 개성과 연결되며 정치적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엘리트 은행가에서 최연소 대통령으로…중도 개혁의 아이콘 되기까지
1995년 마크롱은 파리 명문 리세 앙리 4세로 전학했다. 이후 파리 낭테르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정치대학 시앙스포에서 공공정책을 수학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 밑에서 연구·편집 보조로 활동했다. 이 시기 경험은 훗날 그의 정치 철학 형성에도 영향을 줬다.
2004년 프랑스 최고 행정 엘리트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재무감사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 투자은행 로스차일드로 자리를 옮기며 금융권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글로벌 식품기업 인수합병 거래를 성공시키며 “엘리트 은행가”, “시장 친화적 기술관료” 이미지를 쌓았다.
마크롱은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엘리제궁 부비서실장(대통령실 부비서실장 격)을 맡으며 정치권 중심부에 진입했다. 이후 2014년 36세 나이로 경제장관에 임명되며 프랑스 최연소 장관 기록을 세웠다. 시앙스포를 졸업하고, ENA를 거쳐 고급 관료가 되는 것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정치 엘리트 코스다.
2015년에는 노동시장 개혁과 규제 완화를 담은 이른바 ‘마크롱법’을 추진했다. 재계에서는 환영했지만 좌파 진영과 노동계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2016년 그는 중도 신당 ‘앙마르슈’를 창당했다. 당시 프랑스 정치는 혼란 상태였다. 사회당은 사실상 붕괴 직전이었고 공화당은 비리 스캔들에 휘청거렸다. 마크롱은 자신을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라 설명하며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중도층과 청년층을 빠르게 흡수했다.
유럽 통합과 스타트업 육성, 친기업 개혁, 글로벌화를 강조한 그는 결국 2017년 대선 결선에서 극우 성향 마린 르펜 후보를 꺾고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이 됐다. 당시 나이는 39세였다.
집권 초기 그는 노동 개혁과 법인세 완화, 부유세 개편 등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는 거센 역풍으로 이어졌다.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반발한 ‘노란조끼 시위’는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됐다. 시위대는 마크롱을 “부자들의 대통령”, “현실 모르는 엘리트”라고 비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 시위까지 벌어졌고 프랑스 사회는 극심한 분열을 겪었다.
이 사건은 마크롱에게 ‘똑똑하지만 현실 감각이 부족한 엘리트’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리듬에 맞춘 추종자 안돼”…유럽 흔든 마크롱 발언들
마크롱은 집권 이후 강한 직설 화법으로 국제사회를 흔들어왔다.
가장 유명한 발언은 2019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나온 “나토는 뇌사 상태”라는 표현이었다. 그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맹 경시 기조와 터키의 시리아 군사작전을 비판하며 “유럽은 더 이상 미국에만 안보를 의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그처럼 급진적인 표현은 불필요하다”고 공개 반박했고, 미국 정치권에서도 동맹 균열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되면서 파이낸셜타임스와 폴리티코 등 서방 매체들 사이에서는 “유럽 안보 자립 필요성을 마크롱이 일찍 경고했다”는 재평가도 이어졌다.
마크롱은 이후에도 “유럽은 미국의 속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유럽은 제3의 초강대국이 돼야 한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특히 2023년 중국 방문 뒤에는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유럽은 미국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추종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과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미국 공화당 일각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오판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반면 프랑스와 일부 유럽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마크롱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지도자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우크라 파병 배제 안 해”…유럽 안보 판 흔든 승부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마크롱은 유럽 내에서 가장 강경한 대(對)러시아 메시지를 내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그는 지난 2024년 2월 파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측은 “서방 지상군 파병 계획은 없다”며 즉각 거리를 뒀고, 북대서양조약기구도 공식적으로 선을 그었다.
하지만 마크롱은 이후에도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그는 프랑스 방송 인터뷰와 유럽 정상회의 등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유럽의 안보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결정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를 두고 “마크롱이 독일 대신 유럽 안보 리더십을 가져오려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독일이 장거리 무기 지원 문제에서 신중론을 유지하는 동안 프랑스는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순항미사일 ‘스칼프’를 지원했고, 유럽 방산 생산 확대와 공동 군수체계 강화도 적극 주장했다.
마크롱은 최근에는 프랑스 핵억지력을 유럽 안보 차원으로 확대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내놓았다. 그는 소르본대 연설에서 “유럽은 더 이상 미국 안보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유럽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와 정면충돌…“무역 바주카포 써야”
최근에는 미국과의 통상 갈등에서도 마크롱이 유럽 강경파 선봉에 서고 있다.
마크롱은 지난달 아르메니아 예레반 방문 중 기자들과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럽산 자동차 관세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며 “유럽은 스스로를 보호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럽연합(EU)의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ACI는 상대국이 경제적 압박을 가할 경우 보복관세와 투자 제한, 공공조달 제한 등을 시행할 수 있는 제도로, 유럽 내부에서는 ‘무역 바주카포’로 불린다.
마크롱은 당시 “트럼프는 불안정이라는 위협을 협상 도구처럼 사용하고 있다”며 “유럽은 이미 대응 수단을 갖고 있으며 필요하면 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폴리티코 등 외신들은 이를 두고 마크롱이 단순 관세 대응을 넘어 “미국 중심 경제 질서에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해 소르본대 연설에서도 “유럽은 죽을 수도 있다”고 산업 안보의 취약성을 경고하며 방산·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 분야에서 유럽 자체 생산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의 국가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차원의 산업 지원 확대 필요성도 강조해왔다. 마크롱의 이 같은 경고는 지난해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 과정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등으로 산업 공급망 병목 현상이 현실이 되면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유럽의 미래인가, 마지막 엘리트 정치인인가
지난 2022년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은 임기가 오는 2027년 5월까지로, 1년여가 남았다. 그는 최근 임기를 마치고 나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레임덕이라 할 만한 상황이지만, 그는 외교 역량을 중심으로 여전히 유럽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의 EU 탈퇴 이후 프랑스는 사실상 유럽연합의 핵심 군사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극도로 경직된 노동시장과 과도한 세금, 사회보장 부담 등으로 성장 동력이 떨어져 있던 프랑스에 친기업 개혁을 불러왔다. 최근에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난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경제 성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항공우주산업이나 방위 산업 등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경제 둔화까지 겹치며 친기업 개혁을 이끈 마크롱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이 외에도 유럽 통합, 기술 산업 육성, 안보 자립이라는 의제를 동시에 밀어붙이며 프랑스 정치 지형 자체를 바꿔놓았다.
다만 극우 세력 확대와 이민을 둘러싼 갈등, 경제 침체 우려 속에서 그의 씨앗을 뿌린 중도주의 정치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많다. 프랑스 차기 대선 주자들 중에서 극우 성향인 마린 르펜이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탈리아도 극우로 분류됐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정권을 쥐었고, 영국에서도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 개혁당이 지지율 1위라는 이변을 만들었다.
일부 외신들은 그를 “유럽 자유주의 질서의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그는 일명 ‘그랑제꼴 공화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전형적인 정치 엘리트 코스를 거친 관료이기도 하다. 집권 이후 개혁을 추진하다보니 대중들의 반발은 피치못할 선택지였다. “대중과 거리감 있는 마지막 엘리트 정치인”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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