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현대차가 쏘아올린 화살

“순이익을 30%는 직원 성과급 및 임금 인상에, 다른 30%는 차세대 차종 개발 등 미래 투자에, 또 다른 30%는 주주 환원에 쓰자. 남은 10%는 사회공헌 및 협력업체 지원에 사용하자”

2003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회사측에 제안한 성과 삼분지계(三分之計)다. 당시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면서 경영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있었다. 그만큼 노조의 성과 배분 요구도 거셌다. 매년 파업이 반복됐다. 오죽하면 당시 현대차의 가장 큰 고민이 노사관계였을 정도다.

노조의 요구는 이후 10여년간 지속되지만 사측은 이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대차가 임금인상과 성과급에 박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차의 최근 20년(2006~2025년) 영업이익 대비 성과 배분 비율은 약 17%다. 도요타(8.5%)의 두 배다. 대신 주주들에게 준 게 달랐다. 최근 20년 배당성향은 현대차가 15%로 도요타(30%)의 절반이다. 그러면 현대차는 60%가 넘는 이익을 어디에 썼을까. 최근 20년간 현대차의 영업이익 대비 투자 강도는 59.7%로 도요타의 44.7%보다 15%포인트 높다. 공격적인 해외 생산기지 확장과 인수합병(M&A)에 가장 많은 돈을 쓴 셈이다. 2003년 도요타와 현대차는 각각 글로벌 자동차 기업 순위 3위와 7위였지만, 현재는 각각 1위와 3위로 올라섰다. 투자와 M&A에 더 많은 돈을 쓴 현대차의 입지 변화가 조금은 더 극적이라고 할 만하다.

23년의 화살, SK하이닉스에 꽂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현대차가 끝까지 거부했던 그 요구를, 다른 회사가 받아들였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노사 협상을 통해 10년간 영업이익의 10%를 이익배분(PS)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기본급의 1000%였던 지급 상한선도 폐지했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매출 97조1500억원, 영업이익 47조21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의 10%인 4조7000억원이 성과급 재원으로 정해졌다. 직원 수(3만4549명)를 고려하면 1인당 평균 1억3664만원이다. 평균 기본급이 1억원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2억5000만원 가까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와 내년에도 SK하이닉스의 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성과급만 10억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까지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반도체 부문) 노조가 이익의 15% 배분을 요구하고 나섰다. 다만 삼성전자는 반도체만 있는 회사가 아니다. 스마트폰·가전·디스플레이까지 거느린 복합 기업이다. 반도체 부문만을 떼어내 같은 잣대를 들이대기 어렵다는 것 자체가 이 문제의 복잡성을 말해준다.

기간 고정한 고정 값 성과급, 이례적

앞서 현대차의 사례에서 보듯 이익의 15% 이상을 성과 보상으로 직원에게 배분한 예는 국내에도 많다. 설비투자 부담이 없는 금융회사에서는 꽤 흔히 있는 일이다. 문제는 SK하이닉스처럼 아예 일정 기간 일정 비율을 고정해 놓는 게 합리적인지다.

SK하이닉스의 선택, 제조 부문이 없는 엔비디아보다 제조가 중심인 대만의 TSMC와 비교해 볼 만하다. TSMC는 SK하이닉스보다 직원 수가 2배가량 많다. 2025년 기준 영업이익률은 TSMC 53%, SK하이닉스 49%로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20년 평균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TSMC 37.8%, SK하이닉스 18%로 두 배 차이가 난다. 업황 호황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긴 시간으로 보면 메모리 반도체의 변동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TSMC도 2025년 영업이익의 10.7%를 직원 보상 재원으로 배분했다. 1인당 평균 성과급은 약 1억1000만원으로 규모도 SK하이닉스와 비슷하다. 다만 방식이 다르다. TSMC 보상체계에는 고정 값이 없다. TSMC는 보상 규모를 이사회 산하 보상위원회가 매년 영업 실적과 업계 관행을 고려해 결정하고, 이사회가 최종 승인한다. 개인 보상은 직무 책임·기여·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SK하이닉스는 이익 변동성이 가장 크다. TSMC는 주주환원이 압도적이며, 삼성전자는 투자가 꾸준하다.
SK하이닉스는 이익 변동성이 가장 크다. TSMC는 주주환원이 압도적이며, 삼성전자는 투자가 꾸준하다.

여전히 부족한 주주환원, 그래고 투자는 적극적

주주에 대한 환원은 어떨까. 현금배당성향은 TSMC가 54.5%, SK하이닉스가 4.9%, 삼성전자 24.3%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의 경우 자사주 소각까지 포함한 주주 환원 수치를 강조하지만, 상법 개정에 따른 사실상 비자발적 조치다. 오히려 SK하이닉스는 12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이후 ADR 발행을 이유로 15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반도체 제조는 모든 산업을 통틀어 설비투자 부담이 가장 크다. 설비투자가 제때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면 경쟁력이 훼손된다. 반도체 산업의 업황 변동이 크다는 점에서 20년에 걸친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CAPEX) 투자 비율을 비교해봤다. SK하이닉스가 38.7%로 TSMC의 33.7%보다 높았다. 그런데 이 같은 투자를 통한 수익 효율, 즉 영업이익률에서 다시 차이가 확인된다. 지난 20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TSMC가 37.8%로 SK하이닉스의 18%를 압도한다. 열심히 투자를 했는데 왜 수익성은 낮을까.

성과급 협상 후 SK하이닉스 “투자금 정부 지원을”

이익의 변동성 때문이다. 영업이익 표준편차는 SK하이닉스가 21.2로 TSMC의 5.3보다 4배 이상 크다. 변동계수(CV)는 SK하이닉스가 1.17로 0.14인 TSMC보다 8.4배나 불안정하다. 가장 쉽게 최저점과 최고점의 차이인 이익률 범위를 비교하면 SK하이닉스가 74.6%포인트, TSMC가 19.7%포인트다. 메모리 반도체 고유의 변동성 탓이다. 경기 사이클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투자 판단에 신중해야 하고 재무적 유연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SK하이닉스는 대표이사 명의로 일종의 호소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2046년까지 진행될 용인 클러스터 구축에 600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지주회사 규제 완화와 정부 지원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반도체는 국가 핵심 산업이고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의 추격도 거세다는 이유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은 200조원 이상이다. 2027년에는 300조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20년간 600조원이면 아주 불가능해 보이는 수준은 아니다. 정부 지원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규모와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 지원에 기대기에 앞서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원 배분의 유연성이 중요하다.

과도한 ‘쏠림’ 인텔의 몰락과 한국 제조업의 현실

그 유연성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불과 10여년 전까지 반도체의 제왕은 인텔이었다. 인텔의 실적이 정점이던 2011~2015년 연평균 영업이익률 평균은 28.4%다. 직원 성과급으로 영업이익의 5~8% 정도를 지출했고, 순이익 대비 102%를 주주들에게 환원했다. 빚을 내서 주주 환원을 한 셈이다. 반면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 비율은 18.5%로 SK하이닉스와 TSMC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주주 환원은 지나쳤고, 투자는 부족했다.

우리나라는 주력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이 높다. 인건비 비중이 크다. 두 가지 측면이 공존한다. 생산 현장에서 숙련된 인력은 소중한 자산이다. 투명한 기준을 통해 성과를 적절히 보상해야 한다. 최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탓에 책임 경영도 제한적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노동유연성은 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이다. 생산 효율이 선진국 대비 높지 않다. 그러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사와 하청사의 임금 격차는 크다.

이익금 중 직원 성과 보상으로 배분하는 비율이 10%면 적정할까, 15%가 합리적일까. 5년간 고정하는 게 나을까, 10년에 한 번씩 손보는 게 좋을까. 이는 주주 환원이나 투자도 마찬가지다. 이익은 매출보다 변동성이 크다. 일률적으로 비율과 기간을 정해 놓고 집행하기 어렵다. 성과 보상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성과 보상에서는 투명성이 중요하다. 우리 기업들 대부분에서 등기임원 보수는 주주총회에서 한도를 정하지만 미등기임원 보수는 사실상 최대주주가 지배하는 이사회 재량이다. 경영진에 대한 성과 평가부터 합리적 잣대로 투명하게 한다면 같은 맥락에서 직원에 대한 보상 기준도 마련하기 쉬울지 모르겠다.

더 많은 가치 만들기 위한 균형점 찾아야

주주 환원과 투자계획은 시장과의 소통이다. 매출과 이익이 의미 있게 늘어난다면 주주 환원에 대한 기대보다는 주가 상승에 따른 만족이 크지 않을까?미래 성장과 이어질 투자계획이 제대로 제시된다면 주주들은 당장의 환원을 바라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주가 상승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들이 새로운 룰을 만들면 재계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감당할 수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들이 더 많을 수 있다.

7개의 먹이를 정해 놓고 그저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기(朝三暮四)보다는, 아침에 얼마를 어떻게 줘야 생산에 참여시켜 저녁에 더 많은 성과를 나눌 수 있을지(朝參暮飼)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경영, 결국은 숫자가 아니라 동기의 설계다.

* 본 이미지는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구글 제미나이를 통해 생성했습니다.
* 본 이미지는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구글 제미나이를 통해 생성했습니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