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 확산·물가 부담에 식사량 축소
KFC·올리브가든·PF창스까지 ‘미니 메뉴’ 실험
“적게 먹고 싸게” 원하는 소비자 트렌드 반영
미국식 ‘초대형 접시 문화’ 변화 신호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 외식업계를 상징해온 ‘초대형 음식’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진 데다 비만 치료제 사용이 확산되면서, 레스토랑들이 앞다퉈 음식 양을 줄이는 전략에 나서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소용량 메뉴가 확산되고 있다. 외식비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저렴한 선택지를 찾는 동시에, 식욕을 억제하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를 복용하는 고객이 늘어난 것이 결정적 배경이다.
KFC는 미국 내 4000개 매장에서 메뉴 크기와 바삭함의 정도를 조절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KFC 최고경영자 크리스 터너는 최근 실적 설명회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양에 맞춰 메뉴를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 퓨전 체인 PF창스도 지난해 메인 메뉴에 ‘중간 사이즈’를 새로 추가했다.
시장조사업체 블랙박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외식업계는 5개월 연속 방문객과 매출이 동시에 감소했다. 생활비 상승으로 소비자 지출 여력이 줄어든 결과다. 레스토랑들은 치솟은 소고기 가격과 에너지·인건비 부담까지 겹치며 원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비만 치료제 확산이 외식 수요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싱크탱크 랜드는 미국 성인의 약 12%가 체중 감량 약물을 사용 중인 것으로 추정했다. 모닝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이들 약물 사용자는 외식 빈도가 줄고, 주문량도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무제한 수프·샐러드로 유명한 올리브가든은 지난달 미국 내 900개 매장에서 기존 메뉴 7종의 양을 줄여 다시 선보였다. 라보뱅크의 JP 프로사드 애널리스트는 “음식량을 줄이는 것이 가격을 낮추고 고객을 되돌리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며 “GLP-1 트렌드와도 잘 맞는다”고 평가했다.
미국 식당의 ‘과도한 1인분’ 문화는 20세기 후반 농산물과 에너지 가격 하락, 대량 생산 체계 속에서 굳어졌다. 하지만 2024년 학술지 Food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평균 섭취량은 프랑스인보다 13% 많았고, 이는 비만과 음식물 낭비의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변화에 대한 소비자 수요도 분명하다. 미국외식산업협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75%는 “더 적은 양을 더 저렴한 가격에 먹고 싶다”고 답했다. 이에 해산물 체인 앵그리 크랩 쉑은 튀김 요리와 감자튀김을 소형 바구니에 담은 점심 메뉴를 출시했다.
뉴욕의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투치는 한발 더 나아가 ‘오젬픽 메뉴’를 도입했다. 일반 미트볼 3개 대신 1개만 제공하고 가격도 3분의 1로 낮춘 구성이다. 창업자 맥스 투치는 “손님이 배부르지도 않은데 음식이 남아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식 ‘푸짐함’을 여전히 선호하는 고객층도 적지 않다. 외식업계는 소식과 대식, 두 수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초대형 접시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 식탁의 변화는 아직 진행형이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