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일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형법 355조 2항은 타인의 사무 처리자가 임무에 위배해 손해를 가하는 것을 배임죄로 처벌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계약위반과 같은 사적 자치에 해당하는 본질적 민사사안까지 형벌권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 때문에 영미법계가 한국의 배임죄를 민사상 신뢰의무 위반이나 계약 위반으로 다루는 점과 달리, 우리 대법원은 배임죄의 성립과 관련해 죄형법정주의를 훼손할 만큼 광범위한 확장해석을 통해 사적 자치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이에 필자는 배임죄 해석의 문제점을 살피고 형법의 최후수단성 회복을 제언한다.
형법은 주체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명시하나, 대법원은 부동산 이중매매 등에서 ‘타인을 위한 자기의 사무 처리자’까지 포함해 해석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계약 이행의무(자기의 사무)인 사안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 사적 자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형법은 ‘손해를 가한 때’를 요건으로 하나, 판례는 ‘손해발생의 우려’만으로도 기수를 인정한다. 이는 실제 손해의 발생을 전제로 하는 결과범인 배임죄를,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그 위험만으로 성립하는 위험범으로 변질시키는 것으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추해석 금지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업 경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을 동반한다. 이러한 경영활동을 배임죄로 과도하게 처벌할 경우 기업가 정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법원은 ‘경영상 판단 원칙’을 도입해 배임죄의 성립을 제한하려 한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배임의 고의’를 판단할 때 소극적으로 고려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경영상 판단은 범죄의 주관적인 의도를 추정하는 고의의 문제라기보다, 그 자체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위법성 조각 사유로 다뤄져야 한다.
경영자가 절차적 정당성을 거쳐 회사이익을 위해 판단했다면,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더라도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행위이다. 즉, 경영상 판단은 형법 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 고의의 문제로만 치부할 경우, 수사기관은 결과론적 시각에서 경영자의 의도를 추정해 기소하게 되고, 법관은 사후적 판단으로 경영의 적정성을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경영상 판단을 위법성 조각사유로 구성할 때 비로소 형법의 규범적 통제와 기업활동의 자율성 사이에 합리적 균형을 찾을 수 있다.
현행 특경법은 이득액 50억원 이상 시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규정하는데, 이는 살인죄의 법정형과 유사한 수준이다. 재산적 법익 침해에 생명침해 범죄급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러한 과도한 형벌은 경제활동을 마비시키고 경제적 실패를 범죄화하는 부작용을 낳으므로 형사정책적 재고가 필요하다.
배임죄의 남용은 불명확한 법조항과 이를 확장해서 해석해 온 법원의 사법적극주의적 태도 탓이다. 법원이 입법자의 의도를 넘어선 해석으로 처벌범위를 넓히는 것은 권력분립과 법치주의를 위협한다. 이제 배임죄 해석은 법조문에 충실한 문언해석으로 회귀해야 한다. ‘타인의 사무’와 ‘손해’ 개념을 엄격히 한정하고, 사적자치에 해당하는 민사 문제는 민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또한 경영상 판단은 형법 20조의 정당행위로 포섭하고, 살인적인 법정형은 책임주의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형법이 사회윤리의 최소한이자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보충성 원칙’을 확고히 할 때, 비로소 배임죄는 합리적인 경제범죄 규범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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