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약물중독 어머니 밑에서 벗어나 외조모 손에 컸던 ‘흙수저’
형편탓 해병대 거쳐 대학 진학…자서전 ‘힐빌리의 노래’ 울림
예일대 로스쿨서 ‘멘토’ 피터 틸 만나 변호사·벤처투자자로 성공가도
‘트럼프는 美히틀러’ 비판했지만 직접 만난후 “내가 틀렸다” 번복
상원 도전에 틸·트럼프 전폭 지원...정치신인에도 부통령자리 꿰차
차기 공화당 대권주자 유력...분열된 MAGA 진영 세력 규합 주목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밴스와 (마코) 루비오가 팀을 이뤄 출마한다면, 누가 이들을 이길 수 있겠나”(지난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능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킬 방법으로 내 남편의 친구 JD 밴스를 제4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도록 할 것이다”(지난 18일 터닝포인트USA 연례 총회에서 에리카 커크 의장의 지지선언)
이쯤 되면 대선 출정식을 이미 치른 분위기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보수 진영에서 ‘트럼프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올해 나이 41세. 정치 경력이라고는 상원의원 한 번 뿐. 어느 모로 보나 완숙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신임을 바탕으로 단숨에 부통령 자리를 꿰찬 이후 차기 대선 주자로 가장 유력한 위치까지 선점했다.
개천에서 난 ‘오하이오 흙수저’, 힘겨웠던 유년시절
JD 밴스 부통령은 명실상부한 ‘트럼프 후계자’지만 출신과 성장 배경은 뉴욕 부유층이자 사업가였던 트럼프와는 정반대다. JD는 미국에서도 시골로 꼽히는 오하이오 미들타운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난과 약물 중독, 각종 범죄 노출 등의 사회적 문제가 주변에 널려있는, 전형적인 ‘흙수저’ 였다. 아버지인 도널드 레이 보우먼과 어머니 비벌리 캐롤 밴스는 JD가 어렸을 때 이혼했다. JD의 어머니는 알콜·약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여러 남자와 결혼했다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보다 못한 JD의 외할머니 보니 블랜턴 밴스와 외할아버지 제임스 리 밴스가 JD를 데려와 길렀다.
JD의 외조부모도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외조모는 손주들은 배고프지 않게 먹거리를 넉넉히 챙겨줬고 “가족들과 주말을 즐기면서 살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며 JD의 학업에는 아낌없는 지원을 해줬다. 본인은 1달러 남짓으로 한 끼를 때우면서 JD가 쓸 계산기를 사기 위해 87달러를 지출할 정도였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쉽게 접하기 마련인 범죄의 유혹도 외조모가 확고하게 끊어버렸다. 성격이 불같은 것으로 유명했던 외조모는 JD에게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면 그 애들을 차로 밀어버릴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전해진다. 엄마, 아빠 역할을 해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JD는 ‘mamaw(’할무니‘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유아 언어)’, ‘papaw(할부지)’라 부르며 친부모 이상으로 의지했다.
JD와 외조부모의 끈끈한 관계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JD는 이름을 여러 번 바꿨는데, 이는 어머니가 재혼할 때 의붓아버지 성을 따르는 등 가족관계의 변화가 잦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세번째 남편에게 입양되면서 성을 ‘해멀’로 바꿨던 JD는 이후 외할아버지의 성인 ‘밴스’를 성으로 쓰기 시작했다. 완전한 그의 이름은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모두 그를 JD라 불렀기에 지금도 ‘JD 밴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그는 외조부모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그들이)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라 회고했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해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 화이트 트래시(쓰레기 백인)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해병대, 예일대, 벤처투자자에서 상원의원까지...한 걸음씩 ‘용’으로 발돋움
그는 2003년 고등학교를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외할머니의 교육열 덕에 고교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오하이오 주립대에 합격했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우선 해병대로 눈을 돌렸다. 해병대에 있던 사촌 누나가 군 복무를 한 후에 대학에 가면 제대군인 원호법에 따라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권했다고 한다. 그는 성적도 좋았고, 쓰기나 말하기가 꽤 우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에서도 제2 해병 항공단의 홍보과에서 근무했고, 군 소식을 보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해병대에 몸담았던 5년 중의 6개월여를 이라크에서 보내기도 했다.
2007년 해병대를 상등병으로 전역하고, JD는 오하이오주립대에 들어갔다. 2009년 정치학과 철학 전공으로 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최우등이란 우수한 성적이었다.
이후 2010년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했다. 예일대 로스쿨은 그의 인생에 많은 전환점이 됐다. 글쓰기 실력을 살려 예일대에서 법률 저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의 아내인 우샤 칠루쿠리를 만난 곳도 예일대 로스쿨이었다. 무엇보다 재학 당시 교수의 권유로 자전적 소설인 ‘힐빌리의 노래’를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러스트벨트(쇠락한 지역)의 저소득층이 가난과 약물중독 등의 고리를 끊고 자기 힘으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사회 구조적인 측면과 개인 차원에서 두루 들여다보는 ‘힐빌리의 노래’는 이후 전미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정치권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주립대 학부를 마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도 번번이 떨어지던 내가, 예일대 로스쿨을 1년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억대 연봉 제안을 받게 됐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밴스는 상류층 출신의 동급생들을 보며 계층 격차의 깊이를 다시 인식하게 됐다. 그는 내로라하는 아이비리그 출신들 사이에서 변방의 주립대 출신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도 부끄러웠다는 회고를 남기기도 했다. 로스쿨 졸업 시즌에는 로펌 면접에서 계층 격차를 실감하기도 했다. 한 로펌에서는 저녁 식사까지 포함된 장시간의 면접을 봤는데, 이 식사가 코스에 맞게 여러 포크와 나이프, 스푼이 배열된 정찬이었다. JD는 포크를 쓰는 순서를 몰라 당황했고,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며 나와 당시 여자친구였던 우샤에게 전화로 물어봐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예일대 로스쿨은 밴스에게 벤처투자자,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열어주고 그를 후원해 준 피터 틸을 만나게 된 장소이기도 하다. ‘페이팔 마피아(미국 창업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준 페이팔 출신 창업자들)’의 일원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투자자 피터 틸은 2011년 예일 로스쿨에서 기술 침체와 미국 엘리트 계층의 문제를 주제로 강연했고, 계층 격차 문제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던 밴스는 이에 크게 공감했다. 강연 후 밴스가 틸에게 다가가 공감을 표했고, 이후 e-메일 등으로 연락을 이어가다 2016년 틸이 설립한 미스릴 캐피털에 합류하게 됐다.
예일대 로스쿨이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것처럼 2016년도 현재의 그를 만드는 발판이 됐다. 틸과 함께 일한 경력은 물론이고, 이 때 ‘힐빌리의 노래’가 미 전역에 출간되기도 했다. ‘힐빌리의 노래’는 이후 넷플릭스에서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명배우 글렌 클로즈가 JD의 강인한 외할머니 역을 맡았다.
공화당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2016년이었다. 이때만 해도 JD는 공화당 내 대표적인 ‘트럼프 반대론자’였다. ‘No(안된다)’도 아닌 ‘Never(절대 안 된다)’라는 표현을 써, 자신을 ‘네버 트럼프’라 부를 정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공개적으로 한 ‘문화적 헤로인(마약)’, ‘혐오스럽다(reprehensible)’라는 표현은 애교 수준이었고, 사석에서는 ‘미국의 히틀러’라 꼬집기도 했다.
트럼프 반대→찬성, 극적인 전환...타고난 능변으로 단숨에 부통령까지
보수 진영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트럼프 열풍’을 보며 각성한 것일까. 2020년 JD는 트럼프 찬성론으로 180도 돌아섰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22년 오하이오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트럼프의 지지까지 얻어냈다. 여기에는 그의 후원자를 자처한 피터 틸의 역할이 컸다. 틸은 2021년 7월 트럼프가 머물고 있던 마러라고 리조트를 JD와 함께 방문, 트럼프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자리에서 JD는 트럼프의 마음을 돌렸고, 이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2016년 트럼프에 대한 자신의 비판은 틀렸다고 공개 사과하며 스스로를 “입장을 뒤집은 사람(flip-flop flipper)”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틸은 이후 밴스의 상원의원 선거에 천만달러 규모의 슈퍼팩을 출범시켜 후원하기도 했다. 틸의 금전적 지원, 트럼프의 지지 선언 등으로 힘을 받은 밴스는 2022년 53% 넘게 득표하며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상원의원 한 번의 이력만으로 부통령 자리까지 꿰찼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지명되고, 부통령 후보 자리를 고민하고 있을 때 특히 트럼프의 장·차남이 밴스를 적극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젊고, 흙수저에서 자수성가한 인물인 데다, 인도계 아내를 뒀기에 유색인종 표심을 공략하기 좋다는 점 등이 트럼프에 없는 점을 보충해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트럼프 아들들의 추천과 상관없이 트럼프도 밴스를 믿고 지지했다. 트럼프가 밴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수염과 관련된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밴스는 정치를 시작하면서 젊은 나이를 의식해, 진중해 보이려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다. 주변에서는 깔끔한 인상을 좋아하는 트럼프가 이런 모습을 싫어할 것이라 말렸지만, 트럼프는 수염을 기른 밴스를 보며 “젊은 에이브러햄 링컨 같다”라며 오히려 반겼다.
밴스가 빠르게 정치권에서 입지를 굳히게 된 데에는 그의 타고난 능변의 역할이 컸다. 그는 논리적으로 서사 구조를 잘 짜고 세련되게 말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4년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는 차분하고 준비된 인상,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팀 월즈보다 구조화된 답변으로 “트럼프보다 말 잘하는 인물”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겉으로는 침착하고 합리적인 톤을 유지하지만, ‘우리’와 ‘그들’이라는 대립 구도를 강화하는 언어를 주로 쓴다는 점에서 포퓰리즘형 수사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차분하고 논리적인듯 말하면서 그 내용에는 왜곡과 가스라이팅, 조작적 수사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결코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되겠습니다.
舌禍, 분열된 MAGA 등 산 넘어 산...오하이오 개천 용의 도전, 어디까지?
화려한 화술은 역설적으로 여러 설화(舌禍)도 불러왔다. 아내 우샤와의 사이에서 세 자녀를 둔 그는 특히 자녀 없는 삶을 비판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2021년에는 폭스뉴스의 대표적인 우파 논객 터커 칼슨이 진행하는 토크쇼에 출연해 당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에 대해 “자식 없이 고양이를 키우며 자기 삶과 자신이 내린 선택에 불행함을 느끼는 ‘캣 레이디(cat lady)’들은 나라의 미래도 비참하게 만들고 싶어한다”라고 발언했다. 2020년 11월에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무자녀 때문에 사람들이 소시오패스 성향을 더 갖게 되고 궁극적으로 나라 전체가 정신적으로 조금씩 더 불안정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방송 한 달 뒤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나라의 저출산 때문에 많은 사회 지도층이 소시오패스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들은 2024년 대선 레이스때 다시 주목받으면서 논란이 됐다. 여기에 트럼프가 러닝메이트 제안을 하려 전화했을 때, JD의 7살난 아들이 옆에서 포켓몬 이야기를 하자 그가 “이건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전화니까 30초만 닥치고 피카츄 얘기 그만해라(This is the most important phone call of my life, shut the hell up for 30 seconds about Pikachu)”고 말했다는 일화까지 더해 논란이 증폭됐다. 어린 아들에게 ‘닥치라(shut the hell up)’는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것을 두고, 저렇게 애를 키울 거면 차라리 애 없이 고양이를 키우는게 낫지 않겠냐는 조롱이 나왔다.
이후에도 대선 과정에서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동네 반려동물들을 잡아먹는다’는 가짜 뉴스를 SNS에 유포하거나, 올해 러우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는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을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나라(some random country)’라고 지칭하는 등 설화가 잇달았다.
이런 각종 설화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MAGA(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세력) 진영은 적극적으로 막아줬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MAGA 진영에 균열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MAGA는 파시즘을 찬양하는 극우주의자부터 백인민족주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 미국우선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등 여러 파벌이 기이하게 얽혀있는 구조다. 여러 극단이 한데 모여 부딪히는 것을 정치력으로 한데 모아 집결시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타고난 대중영합적인 능력이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의 당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MAGA내에서 상호 비방과 반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우파 논객 벤 셔피로는 우파 논객 터커 칼슨을 ‘반(反) 유대주의자’라 비방했고, 칼슨은 셔피로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연단에서 내쫓으려 한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지난 20일 우파 운동 조직인 터닝포인트USA의 행사에 등장한 밴스는 “나는 비난하거나 쫓아낼 보수 인사들의 명단을 들고 오지 않았다. 우리에겐 서로를 배척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찰리) 커크가 목숨 바친 대의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해달라”며 봉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없는 MAGA가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분석이 많다. 정치학자인 셰리 버먼은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는 지난 8년 동안 공화당을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아첨 도구로 탈바꿈시켰다”며 “트럼프 없는 공화당은 기독교 민족주의, 경제적 포퓰리즘 등 여러 세력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MAGA가 하나의 세력으로 정치력을 행사해야 밴스의 백악관행(行)도 가능하다. ‘개천 용’이라는 공감대와 능변이 주머니 속에서 삐져나오는 송곳처럼 돌출되는 내부 이견을 잠재우고, 다시 한번 MAGA를 하나로 묶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ate01@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