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목을 받는다. ‘밥·꽃·양’ 타이틀의 이 다큐멘터리는 1998년 있었던 대기업의 정리해고를 다룬다.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였다면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가 사실상 또 다른 노동자를 구조조정하는 사례로 조명됐기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외환위기의 살벌했던 경제 위기에서 기업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택할 수밖에 없던 시절. 회사와 노조는 출혈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결말은 생산 현장이 아닌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로 마무리됐다. 이때 노조는 차선책을 냈다. 회사로부터 식당을 인수해 이들 중 일부 노동자들을 다시 고용했다. 다행히 일은 계속하게 됐지만, 신분은 정규직에서 노조의 월급을 받는 하청 노동자로 바뀌었다. 여성 노동자의 차별을 직접적으로 지적했지만, 본질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다큐멘터리였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을 보면서 이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노란봉투법이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의 문제의식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 대표는 “노동계의 오랜 숙원을 풀었다”며 “역사적으로 큰 일을 했다”고 했다. 아마도 오랜 숙원은 ‘밥·꽃·양’에서 지목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평등화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반면 기업들은 망연자실해 한다.

법안은 선한 동기로 출발했으리라 믿는다.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누리는 권리와 처우가 달라서야 되겠는가. 원청과 하청, 그리고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하위 구조에 속한 노동자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허탈함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불평등한 구조가 해결될 것이기에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하지만 무언가 마음이 무겁다. 선한 동기가 선한 결과를 늘 담보하지 않아 왔던 경험이 많아서다. 더구나 이번 법안의 처리 과정은 지리멸렬한 야당의 미미한 견제 속에 일방적으로 통과되다시피 했다. 상대적으로 충분한 숙의 과정이 적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돌이켜보면 노란봉투법이 빠뜨린 게 있다. 법안은 차별받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현상을 치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왜 그러한 부조리한 구조가 생겼는 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결여돼 있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외주화에 나선 이유를 먼저 따졌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부담, 이를 줄이기 위한 회피책이 외주화와 비정규직 채용이었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밥·꽃·양’은 방만 경영의 자리를 효율 경영이 대체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지 않으면 확신하건데, 더 나은 이익과 생존을 고민하는 기업들은 또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다.

외주화 구조가 불편해졌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새 환경에 적응하려 할 게다. 불분명한 사용자 범위를 두고 소송이 쏟아질 것이고, 불필요하다 싶은 하청 구조는 사전에 갈등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잘라낼 것이다. 그리고 경험상 이때 피해자는 또다시 약한 고리에 속한 노동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20여년 전 생산직 노동자 대신 밥을 짓던 여성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던 것처럼. 훗날 제2의 ‘밥·꽃·양’이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정순식 사회부장 겸 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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