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덕에 누구나 소설 쓰는 시대 도래
인간의 경험·감상 없인 문학 완성 안 돼
![소설 ‘도쿄도 동정탑’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 쿠단 리에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5/news-p.v1.20250515.cd3b5c62efa743f292b05c54937476d5_P1.png)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이 소설은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인공지능)를 적극 활용해 작성됐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소설 ‘도쿄도 동정탑’. 그런데 수상 직후 소설을 쓴 쿠단 리에의 말 한마디에 일본 문단이 발칵 뒤집혔다. AI가 생성한 문제를 그대로 쓴 비율은 전체 글의 5% 남짓. 작가는 “AI는 도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문학계는 AI의 위협이 눈앞으로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누구나 AI를 활용해 소설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일까, 최근 문학 공모전 요강에는 ‘챗GPT 등 AI를 활용한 당선작은 입상을 취소한다’는 경고 문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문학은 ‘언어’라는 가장 정제된 형식 속에 인간의 내면을 담아내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AI의 개입은 문학의 고유성과 인간성의 경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예술을 완성시키는 것은 누구인가.’ 문학평론가 노대원은 신간 ‘소설 쓰는 로봇’을 통해 지금 이 시대의 문학이 피할 수 없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문학을 제작하는 방식뿐 아니라 유통과 비평 등 문학을 둘러싼 생태계 전반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사고 틀을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챗GPT와 같은 AI가 창작자를 위협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워드프로세서나 PC처럼 글쓰기를 보조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술은 창작자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과 함께 비로소 완성되는 과정이라는 이유에서다. AI는 욕망을 품지 못하고 감동하지 않는다. 감상과 해석의 몫은 끝내 인간에게 남아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AI가 창작한다 한들 결국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의미를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SF(Science Fiction) 문학계 젊은 거장인 켄 리우 역시 단편소설 ‘진정한 아티스트’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던진다. “AI가 인간보다 탁월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지만 결국 감상은 인간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가 전한 인식은, AI가 아무리 정교하고 뛰어나게 만든 작품이라도 인간 고유의 경험과 해석이 빠져 있다면, 그 예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닿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AI의 창조성에 대한 환상보다 인간 고유의 창작 태도를 끝까지 지켜내는 ‘러다이트적 실천’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강조한다.
소설가 김초엽도 AI와 글쓰기에 관해 논하는 자리에서 ‘고무 오리’라는 비유를 든 바 있다. 개발자들이 코딩 중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책상 위 고무 오리에게 문제를 설명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듯, 작가에게도 챗GPT는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점검하게 해주는 조용한 청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로운 골방에서 문장 하나에 머리를 싸매던 작가 앞에 말없이 의자 하나 끌고 와 앉는 존재, 바로 그런 의미에서 생성형 AI는 위협이 아니라 창작의 동반자에 가깝다.
소설 쓰는 로봇: AI 시대의 문학/노대원 지음/문학과지성사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