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다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석 달 전 1.6%에서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의 평균 눈높이와 엇비슷하지만 정부 산하 기관이 처음으로 0%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작지 않다.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KDI는 미국의 고율 관세 조치가 수출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정국 혼란이 소비와 투자를 짓눌렀다고 분석했다. 특히 관세 충격이 성장률을 0.5%포인트 깎았고, 내수부진도 0.3%포인트 끌어내렸다. 수출은 연간 기준 0.4% 감소, 건설투자는 -4.2%로 2년 연속 역성장, 민간소비 증가율은 1.1%로 전망했다. 사실상 내수, 수출, 투자가 모두 얼어붙었다는 말이다. 관세 영향이 더 커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수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한 고용 악화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질 좋은 일자리의 핵심인 제조업 취업자는 12만4000명 줄어 전달(-11만2000명)보다 감소 폭이 더 커졌다. 2019년 2월 이후 가장 큰 폭이다. 특히 전자부품과 컴퓨터 분야에서의 일자리 감소가 두드러졌다. 건설업 취업자도 15만명 줄어 1년째 뒷걸음질 중이다. 미국의 관세 압박과 글로벌 경쟁 심화가 제조업 고용을 더욱 위축시키는 양상이다.

청년층 고용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대 후반 취업자는 1년 새 9만8000명 줄어들며, 12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전체 청년층(15~29세) 고용률도 1년 전보다 0.9%포인트 하락하며 1년째 내리막이다. ‘쉬었음’ 인구가 12개월 연속 늘어나 구직 의욕마저 꺾이는 현상도 장기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00인 이상 기업 10곳 중 4곳이 신규 채용 계획이 없다고 하니 청년층은 일자리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고용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산업 구조 변화와 글로벌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다. 전통 제조업은 자동화, 디지털 전환, 공급망 재편에 따라 고용 창출이 약화하고 있는데, 신산업은 고급 인력 위주의 제한적 채용에 그쳐 노동시장에 고용 공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석유화학, 배터리, 철강 등 중국과의 기술 경쟁 심화로 한국의 제조업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고용 악순환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절실하지만 제도와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낡은 규제는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고 인공지능(AI)·바이오 등 미래 산업 인재 양성과 투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달라진 시대에 맞춰 정책과 제도를 과감히 쇄신하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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