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미국 워싱턴DC. 링컨기념관에서 의회의사당까지 내셔널몰을 관통하는 컨스티투션 애비뉴 사이로 ‘AI 엑스포’ 깃발이 나부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도 아니고 워싱턴DC에 AI 엑스포라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워싱턴컨벤션센터 2층에 올라섰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팔란티어’. 미국 방산AI 선두업체로 올해 트럼프 정부의 관세폭풍에도 아랑곳 않고 주가가 58% 급등한 바로 그 기업이다.
팔란티어 부스에서 체험한 기술은 아직도 선명하다. 일단 커다란 고글을 쓴다. 고글 안 눈앞에 펼쳐진 것은 녹색으로 번쩍이는 엄청난 양의 무기 부품 리스트. 각 부품의 기대수명과 현재 상태 등이 빼곡히 입력돼 있다. 교체가 필요한 부품 등 사용자가 따로 점검해야 할 품목은 맨오른쪽 칸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번쩍인다. 팔란티어가 자랑하는 대용량 데이터를 통합 처리하고 입력값을 조정할 수 있는 아키텍처다. 직접 손에 든 기구로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동맹국의 국방부 고위 관료들이 잇달아 다녀갔다”고 했다.
안으로 더 들어가니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이 “중국에 뒤진 미국의 AI기술”을 성토하고 있었다. 슈밋 회장은 특수경쟁연구프로젝트(SCSP)를 설립해 AI 엑스포를 주관하며 실리콘밸리와 워싱턴DC을 잇는 ‘연락책’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혁신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며 “미국이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필수”라고 역설했다.
그로부터 7개월 후. 올 1월 설 연휴에 중국은 미국의 챗GPT 개발비용의 20분의 1로 만든 초가성비 생성형 AI ‘딥시크’를 내놓으며 세계를 강타했다. 딥시크의 역습은 미중 AI 패권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
6월 3일 한국의 대선 날, 워싱턴DC에서는 ‘AI+ 엑스포 2025’(현지시간 6월 2~4일)가 개막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규모를 키워 인프라, 안보, 국방 등에서 미국과 동맹국의 핵심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 학계, 산업계 전반의 관계 구축을 강화한다는 각오다.
그러나 올해도 한국 기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작년 AI 엑스포에서 본 한국 기업은 HD현대가 유일했다. HD현대는 팔란티어와 공동개발 중인 무인수상정(USV) ‘테네브리스’를 현지에서 첫 공개했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100조원 투자”, “과학기술부총리 신설” 등을 외치며 AI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한목소리다. 하지만 정교한 스킴(scheme·운영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AI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를 조성하고, 고성능 GPU를 확보하며, 인재 육성에 힘쓰겠다는 원론적인 구호들만 떠돌 뿐이다.
세계는 이미 AI칩 국가전(戰)이 한창이다. ‘돈이 있어도 살수 없다’는 AI칩 확보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다. ‘석유생산국’에서 ‘AI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대미투자를 늘리고 미국의 AI칩 확보에 안간힘이다.
한국 AI기술은 처참할 정도로 뒤처졌다. 그나마 있던 핵심인재는 ‘탈(脫)한국’을 택하는 실정이다. 100조원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한 고도화된 정책이 절실하다. 중국 등 각국 정부의 지원사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인재유출을 막기 위한 실질적이고 강력한 인센티브를 서둘러야 한다. 시간은 이미 남의 편이다.
천예선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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