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3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모습. [EPA]](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15ec56648c174ccf8e5624dd5407410b_P1.jpg)
나의 힘은 내 이름에 있는 게 아니라 14억명의 인도 국민과 수천년 동안 이어진 불멸의 인도 문화와 유산에 있다.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3연임 총리, 경제통, 요가왕 vs 독실한 힌두교 신자, 즉 무슬림 탄압자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 이후 처음으로 3연임을 달성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 나렌드라 모디(75) 총리의 두 얼굴이다. 인도 최하층인 수드라 출신인 그는 인도 독립 100주년인 2047년까지 인도를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겠다는 비전으로 지난해 3연임에 성공했다.
모디 총리가 첫 집권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인도 국내총생산(GDP)는 두배 이상 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모디 총리의 정권하에서 인도의 명목GDP는 103.1% 증가했으며 세계 경제 10위에서 5위로 급상승했다. 지난달 IMF가 내놓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는 인도가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고, 2028년에는 3위인 독일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지난 10년 동안 ‘실리외교’를 추구한 것도 모디의 강점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면서, 이스라엘에 자국산 드론을 공급해 외화를 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러시아, 우크라이나·서방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면서, 러시아와 현대식 무기의 공동 생산을 포함한 군사기술 협력을 강화했다. 올해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거세진 관세 소용돌이에선 미국과의 빠른 접촉으로 관세 협상을 신속하게 맺을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10년 장기집권하며 경제성장에 매진해 온 모디 총리가 최근 국제분쟁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일 6년만에 발발한 이웃국가 파키스탄과의 무력충돌이 그것이다. 모디 총리가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점에서 무슬림이 주류인 파키스탄과 불거진 무력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그는 무슬림 종파 세력에 대한 탄압을 멈추지 않았으며, 이는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과의 불편한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는 지난 7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등 9곳에 미사일을 발사한 ‘신두르 작전’을 단행한 이후 일주일만인 지난 12일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고 “파키스탄을 향한 군사작전을 일시 ‘보류’한 것 뿐”이라며 “테러 공격이 재발하면 ‘우리의 방식’대로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9살부터 시작한 장사…‘최하층민 수드라’ 출신 모디
![유년 시절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인터넷 캡처]](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732cb1b689c644869b00e963e5735d68_P1.jpg)
가난은 내 삶의 첫 번째 영감이었다.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모디 총리가 경제성장에 올인한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도 맥이 닿아 있다.
모디 총리는 1950년 9월 17일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불과 3년 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농경 사회가 주를 이뤘다. 인도 경제개발계획의 초기 40년(1951-1991년) 동안 경제는 느리게 성장했고, 평균 실질 GDP 성장률은 3.5%에 불과해 소위 ‘힌두 성장률’이라고 불렸다. 인구가 연간 2.2%씩 증가하는데 1인당 소득 증가율은 연간 1.3%에 불과했기 때문에 인도는 ‘빈곤국가’라는 인식이 강했다.
훗날 모디 총리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가난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봤고 그 속에서 살아왔다. 어린 시절 내내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고 말했다.
인도 신분제 카스트에서 가장 낮은 수드라(수공업인)에 가까운 집안 출신인 모디는 어렸을 때부터 생업에 매달렸다. 9살 때 그는 친구들과 함께 음식 노점을 열었고, 15살이 되던 해에는 식료품 상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부터 기차역 노점에서 ‘차이(인도식 밀크티)’를 팔았다.
아버지와 함께 장사를 해온 경험은 훗날 모디 총리의 공적인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삶이였지만, 모디의 부모는 자녀들이 가난의 무게를 결코 느끼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매일 오전 4시가 되면 어린 모디와 그의 아버지는 집을 나서 여러 사찰을 방문한 후 자신의 가게에 도착했다. 이들의 규칙적인 삶에 마을 사람들은 모디 아버지의 발소리만 들어도 시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모디 역시 아버지를 통해 규율의 중요성과 꾸준함을 몸소 깨달았다고 한다.
독실한 힌두교도의 삶, ‘RSS→BJP’ 정치에 첫발
![젊은 시절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SNS]](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53438bd474594df9827b5dc6cf4c5d2b_P1.jpg)
민족봉사단(RSS)과 같은 신성한 단체에서 삶의 본질과 가치를 배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목적이 있는 삶을 살게 됐다
모디의 개인사는 유독 베일에 싸여 있다. 독신이고 자녀가 없으며 단순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선호한다는 정도다.
모리 총리는 한차례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배우자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18세에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쟈소다벤이라는 여성과 조촐한 식을 올렸지만 함께 살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디 총리의 이 같은 삶은 힌두교에 깊이 발을 들인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젊은 시절. [SNS]](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baa3fe6727c94f93938e59bbef514e71_P1.jpg)
독실한 힌두교도였던 모디 총리는 결혼 직후 히말라야로 구도한다며 떠났다가 구자라트로 돌아와 1971년에 힌두 국주수의 단체인 민족봉사단(RSS)에 ‘자원자(프라차락)’로 가입했다. RSS는 현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의 모체다. 프라차락은 가입 조건에 결혼이나 가족생활을 피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혼 사실을 숨긴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모디 총리는 국가에 이바지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늘 목표로 뒀다. 그는 “어렸을 때 RSS에서 활동하는 것이 항상 즐거웠다”며 “RSS는 국가가 전부이며, 사회봉사가 신에 대한 봉사라는 삶의 목표를 일원들에게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하층민의 대변자…‘모디 고향’ 구자라트주 경제 일으켜
![지난 2013년 10월 인도 구자라트주(州) 수상이었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연설하던 모습.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28faa0a9af5e48e08ebe1bdb72263fba_P1.jpg)
빈민층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계층간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디 총리는 1987년 자신이 몸담은 RSS에 의해 인도국민당(BJP)에 배정되면서 정치에 본격 입문하게 됐다. 힌두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비주류 정당이 탄력을 받기 시작하던 시점이기도 하다.
모디 총리는 자신을 ‘하층민의 대변자’라고 말하며 낮은 신분을 서민 정치 표방에 활용했다. 역대 인도 총리들이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 유학파인 것과 달리 모디 총리는 뉴델리에 있는 델리대와 자신의 고향에 위치한 구자라트대에서 정치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국내파’ 출신답게 그는 힌디어와 구자라트어를 주로 사용한다.
BJP에서 정치 경험을 쌓아오던 모디 총리는 2001년부터 구자라트주(州) 수상으로 임명돼 2013년까지 근무했다. 역대 구자라트주 수상 가운데 최장 기간이다.
임기 동안 그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결하고 도로를 건설하며 전력 공급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2003년에는 ‘바이브란트 구자라트(Vibrant Gujarat·구자라트 경제 활성화) 투자설명회’ 행사를 주최해 당시 인도 최대 재벌 중 하나였던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의 수십억달러 투자를 이끌어 냈다.
모디 총리가 주 수상으로 인프라와 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자 구자라트주의 경제성장은 연평균 9%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이후 인도에선 이런 성공 사례를 ‘구자라트 모델’로 불렀으며, ‘개발 및 정부 효율성’의 동의어로 여겨졌다.
모디 총리가 주지사 시절 보여준 ‘구자라트 모델’은 인도의 청사진이 됐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모디 총리는 이듬해인 2014년 BJP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총리가 됐다.
모디 총리의 10년…인도, 세계 경제순위 10위→4위 ‘껑충’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비하르주 마두바니 지역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12a80de2f34a41cd9aaf513fc4ee817d_P1.jpg)
이전 정부(인도국민회의·INC)가 매일 12㎞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 그쳤다면, 모디 정부는 매일 약 30㎞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수도관이 설치된 가구는 전체의 25%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은 75%가 집에서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다
모디 총리가 인도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비결에는 단연 ‘경제발전’이 꼽힌다. 그가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 인도에 고속도로, 수도관, 전력망, 가스관 등 각종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한 것은 3연임을 거머쥐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지난해 12월 인도 프라야그라즈 상암 지역의 갠지스강 위에 새로 건설된 강가철교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cf8b73b203084f8b827a486221c02ab2_P1.jpg)
실제로 모디 총리의 집권기간 동안 인도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4억 인구를 거느린 세계 최대 인구 대국 인도의 2023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8.2%로 주요 경제 국가 중 가장 높았다. 당초 전망보다는 부진하지만 지난해 마지막 분기(10~12월) 국내총생산(GDP)도 6.2%를 기록하며 직전 분기보다 0.6%포인트 높았다.
IMF에 따르면 2014년 세계 10위였던 인도의 GDP는 지난 2023년 3조7000억달러(약 5132조원)를 기록하며 세계 5위로 상승했다. 9년 동안 무려 83%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12월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가 장기 전망을 담은 ‘세계 경제 순위표 2025’ 보고서 따르면 인도는 올해 일본을 제치고 4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나아가 2029년 무렵에는 3위로 독일도 따라잡은 뒤 향후 10년간 굳건히 순위를 지킬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러시아 오가며 실속 챙겨…실리 외교의 강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지난해 7월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열린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와 악수하고 있다.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2a1a5c4957684f0ca1d90ad781052873_P1.jpg)
모디 총리는 취임 이후 미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외교로 국익을 극대화했다.
특히 재선 기간 미국과 파트너십을 한껏 끌어올린 모디 총리는 3연임에 성공한 뒤 첫 행선지로는 러시아를 선택했다. 이는 인도 총리가 선거 후 남아시아 이웃 국가를 먼저 방문하는 전통을 깬 행보다.
지난해 7월 모디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안보·경제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공동 군사협력 활동을 이어간다는 내용을 포함해 러시아와 밀착을 강화한 내용을 가득 담은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리 외교의 길을 걷겠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인도가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새로운 투자, 기술, 무기를 받고 있지만 자치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푸틴 대통령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과 인도의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dd564930f3464aa5b4735d1240d9e22c_P1.jpg)
올해 들어 모디 총리는 전방위로 관세 폭격을 이어가는 트럼프 행정부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를 “무역에 있어 매우 큰 악당”이라 부르며 관세를 통해 불균형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하자 신속한 대응에 나선 것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무역 협정 체결과 미국산 무기 구매,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약속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인도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인도가 미국에 ‘미래 최혜국 대우(Forward Most Favoured Nation, FMFN)’를 제안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미래 최혜국 대우가 적용되면 인도가 앞으로 다른 나라에 미국보다 더 나은 관세 조건을 부여하면 같은 조건이 미국에도 적용된다.
또 인도는 미국산 냉동육류와 다양한 수산물, 가금류, 과일 주스류 등에 대해 현행 30∼100%인 관세를 0∼5% 수준으로 인하하는 대신 미국에 섬유, 장난감, 가죽제품, 가구, 보석류 및 자동차 부품 등 노동 집약 산업에 대한 우대 관세와 의약품 및 산업 장비 같은 공학 제품에 대해서도 장기 우대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을 비롯해 인도, 일본, 한국 등 주요 무역상대국과의 협상을 진행해왔으며, 인도·이스라엘과의 합의 타결을 목전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요가 매니아’ 모디…요가 앞세운 소프트파워 외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가 요가를 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11.9bfd1a71f81841e8a87b6e8ce4ac76dc_P1.jpg)
요가는 모두를 뭉치게 한다. 모든 민족, 모든 종교, 모든 문화를 위한 것이다.
여러 국가들을 오가며 인도의 실리를 챙긴 것 외에도 모디는 요가를 앞세운 ‘소프트 파워 외교’의 구가하고 있다. 인도의 전통적인 운동으로 알려진 요가를 앞세워 인도의 문화와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렸다는 평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요가 동작을 수행하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11.eedbcf7e16a8462aaeab6b06fa3ecfc1_P1.gif)
모디 총리는 지난 2014년 유엔을 움직여 ‘세계 요가의 날’ 지정을 관철하는 데 앞장섰다. 2016년에 유네스코가 요가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데에도 모디 총리의 영향력이 컸다.
요가를 앞세운 소프트외교는 경제와 외교 및 정치적 맥락에서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전략 자원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는 “요가는 종종 인도의 소프트 파워로 여겨진다”며 “이러한 문화 자산은 인도에 경제와 외교에서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요가 동작을 능숙하게 수행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11.8c09f1a299634ebe9751ea8016a2b48a_P1.gif)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바위 위에서 요가 동작을 수행하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11.51f4c421145943ceb4060158c95514b0_P1.gif)
파키스탄 총리 생일날 깜짝 재회에도…결국 ‘전면전 위기’
모디 총리에 실리외교와 경제부흥이라는 성과가 있다면, 다른 한쪽엔 ‘힌두 민족주의’ 정책으로 인도의 소수 종교와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요가를 이용한 소프트파워마저도 무슬림 등 종교적 소수집단을 국가 범주 밖으로 밀어내는 등 힌두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월 5일(현지시간) 우타르프라데시의 프라야그라즈에서 열린 마하 쿰브 축제에서 갠지스 강에서 의식을 치룬 뒤 기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f55057fe80c54f67bcdeff3e6c2c7254_P1.jpg)
특히 이웃 국가인 파키스탄과의 관계는 여전히 불안하다. 양국이 공동 분할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지만, 모디 총리가 힌두교 신자라는 점도 앙숙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디 총리가 속한 BJP는 힌두 민족주의 이념인 ‘힌두뜨바(Hindutva)’를 강하게 지지하는 정당이다. 힌두뜨바는 인도를 힌두교 중심 국가로 만들자는 정치적·문화적 운동으로, 종교적 소수자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 특히 무슬림 교도들을 배척한다.
실제로 모디 총리는 지난 2002년 구자라트주 주총리 시절 현지에서 발생한 ‘무슬림 대학살 사건’과 관련한 책임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힌두교도의 무차별 공격으로 무슬림 1000~2000명이 숨졌는데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등 구자라트 주정부가 편파적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총리로 취임한 뒤에는 방글라데시 등 주변 무슬림 국가들의 비(非)무슬림 이민자들에게만 ‘패스트트랙’ 시민권 취득 특혜를 제공해 반대 시위를 촉발하기도 했다.
문제는 파키스탄 인구 90% 이상이 무슬림 신자인 이슬람 국가라는 점이다. 이에 파키스탄은 인도의 무슬림 인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오른쪽)가 크리스마스인 지난 2015년 12월 25일 당시 파키스탄 총리였던 나와즈 샤리프를 만나 악수하는 모습.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38d8e1c0d3024a559d35c24927229d14_P1.jpg)
물론 총리로 첫 당선된 시기에 양국 관계는 해빙 무드에 접어드는 듯 했다. 지난 2015년 12월 25일, 아프가니스탄 방문을 끝낸 모디 총리가 파키스탄 동북부의 도시 라호르를 예고 없이 방문해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전 총리와의 만남이 성사되면서다.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를 이어온 두 국가 수장이 서로 정답게 손을 맞잡은 모습은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당시 모디의 방문일이 크리스마스라는 것과 함께 샤리프 전 총리의 생일이었다는 점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영국 가디언은 “모디 총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귀국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성사된 이번 깜짝 방문은 핵보유국인 양국 간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던 협상이 세 차례의 전쟁과 65년이 넘는 적대 행위 끝에 마침내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지난해에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가 개선될 조짐이 있었다. 작년 6월 파키스탄 외교부 대변인 뭄타즈 자라 발로치는 인도를 비롯한 모든 인접 국가와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카슈미르 등 핵심적인 분쟁이 대화를 통해 해결되길 바란다고 공식 입장을 빍히기도 했다. 당시 모디 총리가 총선에 승리한 이후 취임식을 치를 예정인 와중에 나온 이 입장문은 양국간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이 무력분쟁으로 번진 가운데, 인도 잠무 지역 푼치에 포탄이 떨어진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3/news-p.v1.20250508.843ee3b989c34e4a86b07cb8c045f79e_P1.jpg)
불행히도 양국 간의 해빙 무드는 최근 산산조각났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난달 22일 분쟁지인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 휴양지 파할감 인근에서 관광객 등을 상대로 한 총기 테러로 26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자 인도는 이를 파키스탄 세력의 테러로 판단, 지난 7일 새벽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싱크탱크 네트워크가 지난 2022년 발간한 보고서 ‘모디 시대의 파키스탄에 대한 인도의 외교 정책’도 인도의 강경노선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힌두 민족주의가 인도의 정치·외교적 접근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며 “인도가 파키스탄에 대해 보다 온건하고 협력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지역 평화와 번영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