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저성장, 대외불확실성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재정 관리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언이 나왔다. 경기가 나쁠 때마다 무조건 재정을 투입하기보다는, 단기적 시급성과 장기적 건전성을 고려한 적정 규모의 재정 운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수백조원의 선심성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들이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이태석 KDI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경제의 복합위기 속에서 재정이 지속 가능하려면 ‘한국형 재정관리 제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인구와 성장률 전망을 반영한 ‘적정 지출 증가율’ 기준을 도입하고, 위기 시엔 한시적으로 재정 규칙을 유연하게 조정할 예외 조항을 두자는 것이다. 정부와 분리된 독립 재정평가원 설립, 정기적 재정 투명성 보고서 발간 등 감시 체계도 제안했다. 미래세대 부담까지 고려한 중장기 전략의 틀 안에서 재정이 운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일할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연금과 의료비 등 사회지출은 빠르게 늘고 있다. 수출도 미국의 통상 정책 변화, 세계 경기 둔화 등으로 예전 같지 않다. 세입 기반은 약해지는데 세출 압력은 커져, 국가채무는 이미 1200조원을 넘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올해 처음으로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웃돌게 된다. 세입보다 세출이 큰 구조가 고착되면서 재정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런 식이 계속되면 결국 재정 절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국가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늘어나면 신용도 하락으로 차입이 어려워지고, 증세로 이어져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기이니 돈을 풀자’는 단순 논리가 팽배해 있다.

문제는 대선 정국에서 퍼주기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주요 공약 중 하나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현재 만 8세 미만에서 18세로 확대하는 것인데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를 위해선 향후 5년간 24조원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대표 공약인 ‘디딤돌소득’은 일정 기준 이하의 가구에 소득 부족분 일부 를 현금으로 지원해주는 선별 복지 제도인데, 대상 범위에 따라 13조~36조원의 추가 예산이 소요된다. 두 후보 공히 ‘정부 지출 구조조정분’ 이외의 별다른 재원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재정은 국가의 마지막 방파제다. 위기 때마다 재정을 앞세우고 선거철마다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재정 규율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재정 준칙의 법제화를 더는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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