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스캠 조직이 폰지 사기까지

범죄 경력 살려 불특정 다수 대상으로 피해자 물색

‘시나리오’만 바꾸면 조직성 사기범죄 저지르기 쉬워

지하철 역사에 ‘트립호스트’ 어플 광고가 붙어있다. 이 어플을 사용한 피해자만 89명, 피해 금액은 약 18억원에 달한다. [독자 제공]
지하철 역사에 ‘트립호스트’ 어플 광고가 붙어있다. 이 어플을 사용한 피해자만 89명, 피해 금액은 약 18억원에 달한다. [독자 제공]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혹시 ○○오빠 아닌가요?”

범죄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범죄조직도 ‘수익률 좋은’ 범죄로 갈아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9일 경기북부경찰청 형사기동대에 따르면 공유숙박 플랫폼 ‘트립호스트’ 관계자 21명이 최근 붙잡혔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이 중 8명은 구속됐다.

이들 일당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4월 초까지 동남아시아 공유숙박 플랫폼을 내세워 보증금과 임대료만 입금하면 동남아 현지 숙박 운영을 대행해줄 수 있다고 홍보해왔다. 이런 수법에 속은 피해자만 89명, 피해 금액은 약 18억원에 달한다.

이들의 수법은 전형적인 ‘폰지사기’로 드러났다. 초기에는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갈취한 피해 금액으로 수익금을 일부 지급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다. 이후 6개월 또는 1년 단위의 중장기 투자상품을 소개하며 더 큰 금액을 투자하도록 하고 어느날 잠적하는 식이다.

동남아시아 공유숙박 플랫폼인 ‘트립호스트’를 내세워 범죄를 저지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들은 2,3월만 해도 투숙객 이용료가 꼬박꼬박 입금됐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따고 설명했다. 사진은 트립호스트 앱 초기화면. [독자 제공]
동남아시아 공유숙박 플랫폼인 ‘트립호스트’를 내세워 범죄를 저지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들은 2,3월만 해도 투숙객 이용료가 꼬박꼬박 입금됐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따고 설명했다. 사진은 트립호스트 앱 초기화면. [독자 제공]

하지만 트립호스트는 여느 폰지사기와 다른 지점도 있다. 경찰이 올해 초 수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붙잡힌 일당은 캄보디아에서 로맨스 스캠 범죄를 저지르던 조직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피싱 범죄로 수법을 바꿨다. 사기를 치려면 사기 대상자, 즉 피해자 물색이 제일 중요한데 이번에 검거된 트립호스트 업체 일당은 로맨스 스캠 범죄 경력을 살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죄 피해자를 찾기도 했다.

헤럴드경제가 접촉한 피해자 A씨는 “처음엔 문자로 자기 지인이 맞는지 문의하는 문자가 와서 ‘문자를 잘못 보낸 것 같다’고 답을 했더니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와 트립호스트 어플을 소개해주면서 자기가 투자할 방을 봐달라며 계속 말을 걸었고 결국 투자까지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트립호스트’ 일당은 허위 매물을 보여주면서 투자를 하면 수익금을 얻을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속이고, 계약이 체결되면 허위로 임대차 계약서를 써서 피해자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독자 제공]
‘트립호스트’ 일당은 허위 매물을 보여주면서 투자를 하면 수익금을 얻을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속이고, 계약이 체결되면 허위로 임대차 계약서를 써서 피해자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독자 제공]

이들 일당은 50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여러 종류의 숙소를 허위로 보여주며 투자를 하면 투숙객을 받아 투자금에 비례해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피해자들을 속였다. 인터넷 기사와 SNS·지하철 광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투자자의 신뢰를 얻었다. 실제 계약이 체결되면 허위로 만든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해 피해자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로맨스스캠이나 보이스피싱이나 크게 구분하자면 조직성 사기범죄에 속하는 범죄”라며 “이런 조직성 사기범죄는 결국 SNS나 문자, 전화로 피해자와 접촉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같기 때문에 이른바 범죄 ‘시나리오’만 바꾸면 로맨스스캠 범죄 조직이 충분히 보이스피싱을 저지르거나 리딩방을 운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수법을 결합하고, 다양화하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이른바 전통적인 보이스피싱만 규정한 전기통신금융사기의 정의를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