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오전 수업 후에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일이 잦습니다. 밖에 나가는 게 귀찮다는 생각도 들고, 얼른 식사하고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물론 연구실에 돌아와서는 식곤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아무튼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입니다. 새로운 한가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희 학교 식당의 음식이 꽤 괜찮습니다. 가성비, 즉 가격 대비 질은 매우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밥을 먹는 경우에는 상차림을 보면서 어휘 이야기를 홀로 풀어보기도 합니다. 상 위에 있는 모든 음식은 어휘 공부의 재료가 됩니다. 오늘의 식단은 밥, 불고기, 계란말이, 어묵볶음, 샐러드, 김치, 시금치입니다. 오늘의 어휘 식단이기도 합니다.
우선 불고기를 볼까요? 불고기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발음의 측면에서 보면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발음이 [물꼬기]인데 불고기는 [불고기]이기 때문입니다. 물과 불의 차이만 있는데 뒷소리가 된소리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게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음운현상에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불고기에서 불은 타오르는 불과는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오늘 식사에 나온 불고기도 국물이 있는 뚝배기 불고기였습니다. 불에 익혔다는 것은 맞겠지만 불에 직접 구운 요리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불에 태운 것과는 관계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한편 불고기의 불을 색깔로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불고기와 비슷한 구조인 불곰이나 불개미의 경우도 된소리로 발음하지 않는데, 의미를 붉은 곰, 붉은 개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붉은색의 느낌이 나는 단어로는 불여우도 있습니다. 붉은 여우라는 의미입니다. 타는 불과는 관계가 적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불고기도 붉은 고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된소리로 발음하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어휘이지만 식탁 위의 어휘 재료로는 충분한 듯합니다.
다음으로는 김치와 시금치를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김치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온 것으로 봅니다. 침채의 옛 발음이었던 딤채가 김치로 변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채소의 의미인 ‘채’는 우리말에서 ‘치’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금치가 바로 그 예입니다. 시금치는 뿌리가 붉은 적근채(赤根菜)에서 온 말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채는 ‘치’로 발음됩니다. 배추는 백채(白菜)에서 상추는 생채(生菜)에서 온 말로 보기도 합니다. 채소의 채가 ‘치’나 ‘추’로 우리말에서는 변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어묵볶음과 샐러드를 보겠습니다. 사실 어묵볶음이라는 말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는 늘 ‘뎀뿌라’라는 말로 불렀습니다. 얇은 ‘오뎅’을 볶은 요리를 뎀뿌라라고 하였고, 도시락 반찬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나중에 뎀뿌라가 일본에서는 튀김의 의미인 것을 알고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뎀뿌라는 사실 포르투칼어 ‘tempero’에서 일본에 전해진 말입니다. 일본을 거치고 우리말로 들어오면서 의미가 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뎀뿌라라는 말 자체를 잘 안 사용하는 듯합니다.
샐러드도 우리는 주로 ‘사라다’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샐러드와 사라다는 다릅니다. 사라다는 마요네즈가 있어야 하고, 단맛이 강합니다. 저는 샐러드에 그렇게 다양한 드레싱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드레싱 주문이 어렵습니다. 사라다는 외래어가 일본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모하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카레도, 돈가스도, 라면도 원래의 모습과는 달라진 말들입니다.
밥상머리에서 여러 생각을 하는 제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음식을 어휘로 생각하고 있으니 배가 고파옵니다. 어휘들을 맛있게 먹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푸짐한 어휘로 배가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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