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플라자 합의’로 약달러 유도

관세 후폭풍에 美 수출경쟁력 제고

EU·中 비우호적…1985년과 달라

환율, 장중 1487.5원까지 급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9일(현지시간) 본격 발효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보로 미국의 만성적 무역·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제2 플라자 합의’인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요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가치를 조정하는 다자간 협의체인 ‘마러라고 합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러라고(사진)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플로리다 팜비치에 소유한 리조트 이름이다. 1985년 미국이 뉴욕의 플라자호텔로 G5(주요 5개국) 재무장관을 불러들여 달러 약세를 압박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저택으로 주요국을 불러 ‘제2 플라자 합의’를 유도할 것이란 의미다. ‘플라자 합의’는 당시 달러 가치가 5년 새 두 배로 상승해 세계 무역을 뒤흔들고 금융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조치였다. ▶관련기사 2·3·4·6·8면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유도하려는 이유는 미국 제조업을 부활하기 위해서는 약(弱)달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달러의 평가절하를 통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무역·재정적자)’가 기축통화인 달러의 구조적 강세에 기인한다는 시각도 한몫한다.

NYT는 제니퍼 번스 프린스턴대 부교수의 기고문을 싣고 “트럼프의 관세광기에는 방법이 있다”며 “이 계획은 마러라고 합의”라고 짚었다. 그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사실 관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며 “트럼프는 세계 경제 및 지정학적 질서를 재편해 미국의 이익에 더욱 부합하도록 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으로 관세 카드를 이용하고 있다. 그 계획은 종종 ‘마러라고 합의’로 언급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 헤지펀드 허드슨베이캐피털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보고서 ‘글로벌 무역 재편을 위한 유저 가이드’에서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마러라고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란은 국가를 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관세’를 제안했다. 미란은 보고서에서 “자국 통화를 지키기 위해 달러를 보유한 국가는 달러를 팔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세 인상을 이용한다. 징벌적 관세 이후 유럽, 중국 등 무역 상대국이 관세 인하 대가로 어떤 통화 협정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문제는 달러 약세를 인위적으로 만들 때 발생할 후폭풍이다.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누리려면 그만큼 강한 수요(달러나 미국 국채 매수세)가 있어야 하고, 그럼 어느 정도 달러 가치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이른바 ‘트레핀 딜레마’가 발생한다.

미란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100년물 미국 국채’를 동맹국에 사실상 ‘강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약달러에도 달러의 기축통화로써 패권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미란의 생각이다.

다만 플라자 합의 때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플라자 합의 때는 주 협상 대상인 일본과 독일이 미국 국방력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합의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국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 자체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나워싱턴포스트(WP)는 “월가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백악관이 지금 당장은 ‘마러라고 합의’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향후 환율 협정 체결을 시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전망한다”며 “트럼프의 핵심 목표인 미국 제조업 부활은 단순한 관세 인하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한편 지난 8일(현지시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02.96을 나타냈다. 달러인덱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점차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 3개월 동안 109에서 102로 7% 가량 하락했다.

9일 원/달러 환율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격화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00원 선에 바짝 다가섰다. 이날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8원 오른 1,484.0원으로 출발한 뒤 오전 9시 10분께 1,487.5원에 이르렀다. 정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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