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피해 할머니의 고백
[HOOC=김현경 기자]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16세의 소녀가 동생을 안고 사탕을 팔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번쩍하고 불꽃이 일었습니다. 놀란 소녀는 아기를 안고 산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일을 하러 갔던 엄마는 전신 화상을 입은 채 돌아왔고, 열흘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70주년인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위령식이 열렸다.
생후 7개월밖에 안 된 동생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이제 86세의 할머니가 된 백두이 씨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그는 1935년 일제의 수탈을 피해 배를 타고 일본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백 씨 말고도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 200만명이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백 씨는 남편의 고향인 합천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 씨는 “우리는 히로시마에 있어서는 안 됐고, 일본은 우리를 강점해서는 안 됐다. 일본이 미국을 공격해서도 안 됐고, 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져서도 안 됐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원폭 전에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인들이 나를 아랫사람으로 취급했고, 조국에 돌아와서는 한국인들이 나를 유전적인 결함이 있는 것처럼 피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백 씨가 살고 있는 합천은 원폭 피해자 600여명이 머물고 있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립니다. 마을에는 원폭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과 한국 어느 정부에서도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잊혀진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 씨는 시력에 손상을 입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백 씨를 비롯한 희생자들은 지금도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히로시마로 강제 징용됐던 이봉문(90) 씨는 “우리나라는 힘이 없는 나라였고, 우리는 그곳에서 모든 걸 잃었다”면서 “원폭의 순간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지우기엔 너무나 치명적인 상처”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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