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관리위원회에 호소할 문제를 지금 와서 터뜨렸는데, 당사자도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다.” 새누리당 윤리위원회가 ‘윤상현ㆍ최경환 공천개입 의혹 녹취록 사건’에 대해 첫 입장을 밝혔다. 이진곤 위원장은 “다루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시기적으로 다루기가 어렵다”고 했다. 정리하면 전당대회 직전에 ‘공개 의도가 불순한’ 녹취록 사건을 건드리면 갈등이 불거질테니 새 지도부에 공을 넘기겠다는 뜻이다. “독한 마음으로 하겠다”던 취임 일성은 벌써 흔적을 찾기 어렵다.

윤리위만 탓할 일은 아니다. 윤리위가 녹취록의 전말을 조사하려면 당이 사건을 회부해야 하지만, 지도부는 “책임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녹취록이 공개된 지 겨우 일주일 지났지만 아침 회의에서 아예 사라졌다. 윤ㆍ최 의원은 사과도 해명도 없다. 녹취록에 거론된 지역구의 서청원 의원은 27일 동료 의원 40여명과 ‘단합’을 위한 만찬을 가졌다. 녹취록을 공개한 김성회 전 의원은 묵묵부답이다.

녹취록은 이렇게 묻히고 있다. 일각에서 선거법 위반 소지를 주장하는 사건이 쉽게 묻힐 수 있는 까닭은 ‘밀실 정치’를 당연시하는 여의도 인식에 있다. 김 전 의원에게 쏟아졌던 “비겁한 행동”이란 비판은 특정 계파만의 주장이 아니다.

중립적인 의원들도 “정치 과정에서 흔히 있는 대화인데 공개하니 문제가 된 것”, “증거가 없을 뿐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런 대화는 많다”는 인식이 주류다. 한 의원은 “이제 누구를 믿고 말하겠나. 이제 본인이 나눈 대화도 녹음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선거 개입’보다 ‘녹음과 폭로’가 문제라는 정치권의 인식은 1992년 초원복집 사건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지역감정 유발을 모의한 세력은 대화 내용보다 불법 도청 행위를 부각시켜 결국 선거에 승리했다.

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도 그대로일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을 거론한 선거 개입을 ‘의례적인 정치적 대화’로 이해하는 일반 시민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묻으면 묻힐 것’이라고 믿는 집권여당의 안이함이 우려스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