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3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2
“왜요? 치타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큰 상금과 명예가 걸린 대회인데 이왕이면 우수한 머신을 모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치타라면 생산된 지 38년이나 지난 고철 아닙니까. 껍데기도 찌그러지고 게다가 불에 타서 시커먼 고물을…”
“겉은 어떨지 몰라도 6000㏄ 배기량에 8기통, 500마력을 자랑하는 괴물머신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시지 않아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껍데기에는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초상을 변형하여 디자인 처리를 했고요…”
“……”
“헤어핀과 같은 코스에서 드리프트하기에 유리하도록 후륜을 기반으로 하고 유사시엔 4륜으로 구동할 수 있도록 튜닝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명차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를테면 유호성은 거성 재벌2세의 통각점을 건드린 셈이었다. 치타의 성능을 거론하는 자체부터가 재벌2세를 고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므로.
“하지만 ‘부가티 베이런’이라든지 ‘람보르기니’같은… 태생부터 명차인 것들을 몰면 우승 확률이 더욱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페라리 정도는 되어야…”
“그따위 머신에는 혼과 염원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혼과 염원이라고요? 저는 지금 머신의 성능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랠리 경기는 사막과 얼음길, 진흙탕 속을 뚫고 달려야 하는 거친 경기라는 걸 왜 모르십니까?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경기란 말입니다.”
“그래서 혼이 담기고 염원이 녹아들어 있는 치타를 타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우리 치타에는 선대 회장님의 염원이 담겨있고, 다카르 랠리 경기 도중에 목숨을 잃은 드라이버의 혼이 배어있단 말입니다.”
재벌2세의 말투는 다소 격앙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애초부터 작정한 것인지 유호성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제 의견을 피력해 나가는 중이었다. 어쩌면 그는 일류 드라이버라는 자만에 깊이 빠져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재벌2세는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내뱉은 셈이었고, 유호성은 듣지 않아야 좋을 말을 듣게 된 셈이었다. 다카르 랠리 경기 도중에 목숨을 잃은 드라이버의 혼이 배어있다는 말 한 마디로부터 전해지는 충격은 의외로 컸다.
“그럼 치타가… 사람을 죽인 차라는 말씀입니까?”
유호성의 낯빛은 이미 하얗게 질려있었고,
“미안하지만… 그렇습니다.”
재벌2세의 표정은 의미심장하게 굳어 있었다.
“드라이버가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면 머신도 상당히 파손되었을 텐데 그걸 뚝딱뚝딱 고쳐서… 다시 타라는 말씀이십니까?”
“파손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불에 탔을 뿐입니다.”
“그럼… 그 차를 몰던 드라이버가 불에 타죽었다는 말씀이로군요. 아직 그 머신에 귀신이 들러붙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찝찝하게 그걸 타고 어떻게 랠리 경기에 출전하라는 말씀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유호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차라리 때려치우고 말겠다는 표정이 역력했으니 실로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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