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1회> 사랑을 위한 의식 (3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마지막 긴 거리 구간입네다. 여기는 모래웅덩이도 없고 잔디구역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습네다. 올경사와 내리경사가 조금 심하긴 하지만 타격대에서 처음에 잘샷을 날리면 정착지에 오르기가 수월해집네다.”
“잘샷?”
“아, 좋은 공알 말입네다. 영어로 굿샷!”
캐디는 매우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강유리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성적은 젬병일 수밖에.
마지막 홀, 퍼팅을 끝내고나서야 그린 주위에 수백 명의 인파가 모여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정도였으므로 경기를 벌이는 내내 아마도 그녀는 정신 줄을 놓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강유리의 성적은 그야말로 치욕적이었다. 11오버 파! 즉 83타였다. 평범한 아마추어 주말골퍼라도 심심찮게 들락거리는 그런 점수를 기록했으니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2010년이던가? 캐나다에서 벌어진 작은 규모의 지역대회에서 제이미 쿠렐룩 선수는 61타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낸 바 있다. 전반 성적은 이븐에 그쳤지만 그는 후반 들어 펄펄 날아서 무려 11언더파를 치고야 말았다. 일곱 개에 달하는 파 3홀과 파 4홀에서 모두 버디를 잡았고, 나머지 두 개의 파 5홀에서는 모두 이글을 잡은 것이었다.
제이미 쿠렐룩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PGA투어 9홀의 최저타 기록은 코리 페이빈 선수가 이루어 낸 10언더파, 즉 26타였다. 25타든, 26타든… 무아지경으로 골프에 몰입해서 경기하기 전에는 결코 근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임에 확실한 것이다.
“뭐라고? 강유리 선수가 11언더 파를 쳤다니… 제이미 쿠렐룩 선수와 동 타를 이루었단 말이야?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우리 거성그룹의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군.”
퇴근시각에 임박해서 날아든 소식에 거성그룹의 스포츠마케팅을 담당하는 상무는 하마터면 만세라도 부를 뻔 했다. 그러나…
“상무님…”
“왜 그래? 강유리 선수가 빵빵한 기록을 냈는데 어째서 벌레 씹은 얼굴이야?”
“11언더 파가 아니라 11오버 파예요!”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11오버 파? 그럼 83타를 쳤단 말이야? 에라이 염병… 한 달에 한 번씩 필드 구경하는 나도 그 정도는 치겠다.”
거성그룹 스포츠마케팅 팀 내부는 갑자기 불 난 호떡집으로 변해버렸다. 이미 얼굴이 죽상으로 변해버린 담당 상무는 연거푸 한숨을 세 번이나 내쉬고는 헐레벌떡 재벌2세의 방으로 찾아들어갔다. 재벌2세가 퇴근하기 전에 긴급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권도일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거의 같은 무렵이었다. 권도일 역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핫라인을 연결하여 재벌2세를 찾았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지요.”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재벌2세의 전화목소리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그게… 어째서 잘 된 일입니까? 골프대회를 열기 위해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데요? 추락한 강유리 선수 위상은 또 어쩌고요?”
권도일은 이렇게 재차 물었다. 하지만 재벌2세의 대답은 의외였다.
“토끼와 다람쥐… 둘 다 잡으려다가 놓치는 것보다는 실하게 살찐 토끼 한 마리만 쫓는 게 훨씬 낫다는 말입니다. 나는 실하게 살찐 유호성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게 재벌의 셈법일까? 오히려 재벌2세는 호탕하게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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