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때 벤처투자 붐은 버블 양산 내수 살리기 무분별 카드발급 신용불량자 양산 심각한 후유증 국토균형발전이 부동산 투기로 담보대출 폐해 하우스푸어 속출

‘깡통 국가’ ‘깡통 기업’ ‘깡통 주식’ ‘깡통 카드’ ‘깡통 부동산’ ‘깡통 통장’ 그리고 ‘깡통 가계(家計)’.

‘깡통’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30년간 한국 경제사의 변곡점에 ‘붐(boom)’이라는 양지가 있었다면 그 대척점에는 늘 ‘깡통’이라는 그늘이 있었다. ‘붐’의 역사는 ‘거품(버블)’을 수반했고 그 거품은 다시 ‘깡통’의 역사로 바뀌곤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러낸 우리나라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시장 진출 본격화로 이듬해인 1989년 4월 코스피지수 1000시대를 맞이했다. 농민들은 논밭을 팔고 영농 자금을 대출받아 주식투자에 나서기도 했다. 회사원들은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증권사 객장에 몰려들었고, 주부들마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1990년 코스피지수가 500선까지 주저앉으면서 ‘깡통주식’이 등장했다. 그해 10월 증권사들이 일괄적으로 깡통 계좌 보유주식 매각에 나서면서, 개미들은 말그대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억대 투자금을 날린 개인투자자나 이들의 돈을 잘못 관리한 증권사 직원이 자살하는가 하면, 막대한 손해를 입은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사회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후 ‘뚝심’으로 버티며 1995년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과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도취해있던 우리 경제는 ‘한보ㆍ기아사태’의 파고를 넘기기 무섭게 외환 고갈에 따 른 국가 부도사태, ‘깡통 국가’의 위기를 맞았다. 1994년 1000선을 재돌파했던 코스피지수는 다시 급락세를 타며 300선마저 무너졌다.

경제 전문가들은 “‘깡통’ 역사의 본질에는 정부의 ‘언발에 오줌누기’식 단기성 혹은 땜방 정책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가 벤처투자 붐으로 국가 경제 재건에 착수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버블로 이어졌고 또다시 ‘깡통벤처’ ‘깡통주식’으로 돌아왔다. 국내 소비시장 위축을 막기 위한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 역시 곧 카드 사태로 번지면서 중산층을 신용불량자로 내몰았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서울 강남의 부동산 투기 바람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2006년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버블 세븐’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지만 이내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집값은 반 토막이 나고 ‘깡통 주택’ ‘깡통 아파트’ ‘깡통 상가’ ‘깡통 분양권’ 등이 양산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는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물론 가계경제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담보대출로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을 ‘하우스 푸어’로 만들었고 소비시장 위축으로 깡통 차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깡통의 역사’가 개인의 실패에서 집단의 실패로 옮겨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중산층 몰락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적 이슈로 인한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다수의 분노가 한꺼번에 표출돼 극심한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체제 자체가 위험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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