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사진〉이 데뷔 10주년을 맞아 최근 기념앨범을 발표했다.

1980년생인 장윤정이 10년 전 트로트 가수로 데뷔할 당시 나이는 스물셋. 이미 19세 나이에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가요계 문을 두드렸지만 실패를 맛본 후 수년간 무명기를 거쳐야만 한 장윤정은 기존의 댄스, 발라드 장르를 과감히 포기하고 트로트를 선택,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물론 그녀의 도전에 대한 가요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데뷔곡 ‘어머나’의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그녀는 금세 차세대 ‘트로트 퀸’으로 주목받았고 트로트계에 ‘신세대’ 바람을 일으켰다.

트로트 혹은 성인가요 시장은 ‘장윤정’을 기점으로 이른바 ‘혁신’의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점이다.

장윤정 이전 트로트는 그야말로 젊은이들에게는 ‘옛날 노래’ ‘흘러간 노래’ ‘촌스런 노래’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로 대표되는 ‘트로트 4대천왕’의 장기 집권이 계속됐고, ‘주류’ 가요계에서 트로트는 점점 ‘마이너’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장윤정(가수)
1980년생인 장윤정이 10년 전 트로트 가수로 데뷔할 당시 나이는 스물셋. 이미 19세 나이에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가요계 문을 두드렸지만 실패를 맛본 후 수년간 무명기를 거쳐야만 한 장윤정은 기존의 댄스, 발라드 장르를 과감히 포기하고 트로트를 선택,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물론 그녀의 도전에 대한 가요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데뷔곡 ‘어머나’의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그녀는 금세 차세대 ‘트로트 퀸’으로 주목받았고 트로트계에 ‘신세대’ 바람을 일으켰다.
장윤정(가수) 1980년생인 장윤정이 10년 전 트로트 가수로 데뷔할 당시 나이는 스물셋. 이미 19세 나이에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가요계 문을 두드렸지만 실패를 맛본 후 수년간 무명기를 거쳐야만 한 장윤정은 기존의 댄스, 발라드 장르를 과감히 포기하고 트로트를 선택,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물론 그녀의 도전에 대한 가요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데뷔곡 ‘어머나’의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그녀는 금세 차세대 ‘트로트 퀸’으로 주목받았고 트로트계에 ‘신세대’ 바람을 일으켰다.

‘어머나’는 그러한 트로트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를 마련한 곡으로 평가받는다. 5살짜리 꼬마아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따라부르는 ‘국민송’의 등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아이돌, 댄스 시장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가요 시장과 소위 트로트 시장의 간격은 좁혀지기 힘들어 보였지만, 장윤정의 ‘어머나’로 인해 세대간의 벽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윤정은 ‘1곡 가수’로 끝나지 않고 ‘짠짜라’ ‘어부바’ ‘꽁깍지’ ‘이따따요’ ‘장윤정 트위스트’를 연이어 메가히트시키면서 진정한 ‘트로트 퀸’ 자리에 올랐다. 2007년에는 선배가수들을 누르고 ‘트로트계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가요계가 장윤정 이후 트로트와 신세대 가요를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였는데, ‘세미 트로트’라는 장르의 탄생이 대표 산물이다. 다소 ‘올드’ 하다고 느낄 수 있는 ‘트로트’ 앞에 절반의 뜻을 담고 있는 ‘세미’를 붙여 젊은 층에게도 어필했던 것.

이후 장윤정과 같은 소속사인 인우프로덕션에서는 ‘남자 장윤정’을 표방한 박현빈이 등장해 큰 성공을 거뒀고 홍진영, 윙크 등이 큰 주목을 받았다. 또 LPG, 오로라 등 트로트 걸그룹까지 등장했다.

이 시간에도 20대 신세대 트로트 가수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직 장윤정을 뛰어넘을 ‘스타’로 주목받지 못한다. 아이돌 시장으로 획일화된 가요계의 문제일까, 아니면 걸출한 신세대 트로트 스타의 부재가 문제일까. 어찌 됐건 2013년에는 ‘제2의 장윤정’이 탄생하길 기대해 보겠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dheeh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