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인사 고문아픔 다룬 영화 ‘남영동 1985’의 정지영 감독

“고 김근태 고문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스크린쿼터 운동이 한창이던 몇 년 전 김근태 고문이 설립한 한반도재단에서 저에게 상을 주면서 영화인과 국회의원으로 몇 번 만난 것이 다였죠. 저를 잊지는 않고 있었는지 촛불시위 때 우연히 곁에 있었는데, 집회 사회자가 저를 소개하지 않고 넘어가자 큰 목소리로 ‘여기, 정지영 감독도 와 있다’고 말해 주더군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민주화 운동 시절, 정권으로부터 당한 끔찍한 고문을 그린 ‘남영동 1985’(22일 개봉)의 정지영(66) 감독은 고인과의 인연을 이렇게 더듬었다. 그러면 고인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오래 전 임철우 작가 소설 ‘붉은 방’을 읽고 고문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 속 경찰은 철저히 야만적인 고문 기술자이지만 가정에서는 성실한 가장이죠. 소설은 먼저 장선우 감독이 영화화하려다 서슬 퍼런 당시 시대 분위기 때문에 무산되고, 저는 고문경관 이근안을 모델로 한 구상을 오랫동안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부러진 화살’ 개봉을 준비 중이었던 지난해 말 김근태 고문이 타계하고, 고인의 수기 ‘남영동’을 읽게 됐습니다. 곧바로 영화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정지영(영화감독)
“고 김근태 고문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스크린쿼터 운동이 한창이던 몇 년 전 김근태 고문이 설립한 한반도재단에서 저에게 상을 주면서 영화인과 국회의원으로 몇 번 만난 것이 다였죠. 저를 잊지는 않고 있었는지 촛불시위 때 우연히 곁에 있었는데, 집회 사회자가 저를 소개하지 않고 넘어가자 큰 목소리로 ‘여기, 정지영 감독도 와 있다’고 말해 주더군요.”
정지영(영화감독) “고 김근태 고문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스크린쿼터 운동이 한창이던 몇 년 전 김근태 고문이 설립한 한반도재단에서 저에게 상을 주면서 영화인과 국회의원으로 몇 번 만난 것이 다였죠. 저를 잊지는 않고 있었는지 촛불시위 때 우연히 곁에 있었는데, 집회 사회자가 저를 소개하지 않고 넘어가자 큰 목소리로 ‘여기, 정지영 감독도 와 있다’고 말해 주더군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참혹한 고문의 현장을 스크린에 옮기면서 관객이 고문 피해자만큼 아파할까를 두고 가장 고민했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아픔을 공유해서 과거 시대의 폭력을 반추하고 반성해보자는 게 영화를 만드는 목표”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 중반, 정 감독은 데뷔 초창기로 주로 멜로 영화를 연출했다.

“역사나 사회를 소재로 한 영화는 꿈도 꿀 수 없었죠. 당시 한수산 작가의 ‘거리의 악사’를 원작으로 동명 멜로영화를 만들었는데, 검열로 인해 10분 이상이 잘려나가 스토리 연결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시위나 연행, 철거, 재개발 등 내용은 암시조차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자타공인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는 ‘남부군’과 ‘하얀 전쟁’으로 전면에 드러났다. 90년대 말 이후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던 정 감독은 올해 초 ‘부러진 화살’로 성공적인 ‘재기’를 했다. 투자자의 외면과 현실에 발맞추지 못한 기획 등으로 나이 50줄에만 들어서도 작품활동이 어려운 국내 영화계의 ‘조로’ 풍토에서 일흔 가까운 나이에 현실과 뜨거운 호흡을 하는 정 감독의 존재는 여러 모로 젊은 영화인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정 감독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어느 세력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허약한 민주주의”라고 진단했다. “민주주의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바뀌어서는 안 되는, 사회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정 감독은 차기작에 대해 “분단을 소재로 한 애틋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리겠다”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