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감시조 피해 흡연자끼리 승용차 타고 회사주변 돌며 도둑흡연 · 카페선 경보벨까지…용감한 끽연가들 기상천외한 행태

“크읍, 이놈의 담배 끊어야지.”

빈 콧물을 삼키는 직장인 나한대 씨 입에서 자연스레 ‘욕지거리’가 새어나온다. 체감온도가 어느새 영하로 떨어졌는데 지난달 사옥 지하 흡연장이 폐쇄됐다. 그나마 찬바람은 막아줬는데 이젠 1층 정원에서밖에 흡연이 안 된다. 괜스레 이른 아침부터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금연령이 떨어진 기업의 애연가들이 초겨울 날씨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회사에서 추진 중인 대대적인 금연 정책 탓에 점점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건강과 가족을 생각하면 당연한 금연이지만 그래도 출근만 하면 치밀어 오르는 흡연 욕구는 통제할 길이 없고 그들만의 기상천외한 끽연기가 펼쳐진다.

오후 3시 나른한 시간, 사탕을 빨고 있는 김 차장에게 이 과장이 다가온다. “차 준비됐습니다”는 속삭임에 김 차장은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회사 큰길 건너로 나온 두 사람은 옆 부서 절친 최 차장과 박 과장이 탄 승용차가 정차하자 빨려들어가듯 뒷좌석에 오른다.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눈 뒤 출발한 자동차 안에서 네 사람은 동시에 담배를 꺼내문다.

“아~ 좀 살겠구먼”이란 김 차장의 한숨에 운전대를 잡은 박 과장은 “창문 살짝 올려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라며 연방 연기를 뿜어낸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정차한 그때, 최 차장이 “야야, 김 상무. 앞에 김 상무”라고 외친다. ‘침상 위 수류탄’도 아닌데 넷은 번개라도 맞은 듯 동시에 고개를 숙인다. 다행히 길을 건너던 인사팀 김 상무는 제 갈 길을 간다. 다시 출발한 뒷좌석에서 김 차장이 박 과장 뒤통수를 치며 “그러게 내가 반대편으로 가자고 했지. 승진 못하면 책임질래?”라고 타박을 한다.

A 사에 다니는 이들은 최근 회사의 금연 정책 된서리를 제대로 맞았다. 금연건물 지정은 흔하지만 ‘사업장 반경 1㎞ 금연’이라는 초강수에 나름 자구책을 짜낸 것이다. A 사 주변에는 이들처럼 인근을 빙빙 돌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 승용차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게다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인근 건물의 주차장ㆍ주택가 등지에서 몰래 담배를 피워대는 탓에 주민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B 사에 다니는 애연가들은 회사가 운영하는 인근의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지난해 대대적인 금연 정책 발효 이후 건강검진 등을 통해 흡연자를 가려내며 통제하는 가운데 자칫 잘못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흡연하는 사실이 회사에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B 사의 한 직원은 “점심식사 뒤 삼삼오오 모여 커피전문점 흡연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던 직원들에게 순찰조가 경고 메일을 보낸 게 발단이 돼 출입을 자제한다”며 “커피전문점 내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다. 금연 정책 자체는 공감하지만 도가 지나친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반대로 C 사 인근의 2층 카페는 애연가들에게 인기다. 이곳을 흡연 장소로 애용한다는 C 사의 한 직원은 “카페 주인이 인사팀 흡연 감시조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고, 감시조가 들어서면 카운터 밑의 버튼을 눌러 2층에 알려준다”며 “담배와 재떨이 등을 치우느라 모양새는 좀 빠지지만 그래도 들키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D 사 근처 카페는 오후에는 앉으려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다. 유흥가 중심이라 커피전문점은 많지만 대부분 금연인 가운데 이곳을 포함해 2군데 카페는 흡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직원들끼리나 외부 거래처 손님을 만나려면 예약을 해야 할 정도다. 이 카페를 애용한다는 한 직원은 “커피 맛도 별로고 인테리어도 허름하지만 오로지 흡연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애연가 사이에서 인기”라며 웃었다.

곳곳에서 감시가 삼엄하다 보니 금연자 행세를 하려는 노력도 가상할 정도다. 팀별로 팀장을 금연 파수꾼으로 정한 E 사에서 애연가들은 팀장이 회의에 들어가거나 외근 나갈 때를 노린다. 냄새가 섞이면 더 오래가기 때문에 자극적인 음료, 특히 ‘다방커피’는 피한다. 바람은 등지고 피어 냄새가 옷이나 몸에 배는 것을 피하고, 흡연 후 양치질과 가글은 물론 세수까지 해준다. 스킨과 로션으로 마무리하면 완전범죄를 할 수 있다.

반면 대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곳도 있다. 그것도 목재와 패널로 지어져 화재에 취약한 건설회사 모델하우스에서. 건설회사 F 사의 한 모델하우스에는 도우미 등 직원들을 위한 흡연실이 마련돼 있다. 가뜩이나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종일 손님을 맞으며 감정노동에 시달려 스트레스가 심한 직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화재 예방을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모델하우스에서 금연은 기본이지만 강제할 수 없는 특성상 차라리 흡연실을 마련해주는 것이 화재 예방 효과가 큰 것으로 판단됐다”며 “흡연실이 없던 때 외진 곳에서 몰래 피우다가 화재가 날 뻔했던 이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덜 위험해졌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애연가 사이에서는 담배회사로 옮기고 싶다는 말까지 나돌지만 담배회사라고 특별한 복지가 있는 건 아니다. 한 담배업계 관계자는 “흡연자라고 인사상 불이익 등 차별하지 않는 정도지, 특별한 것은 없다”며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고 불편함 없이 공존할 수 있도록 공평하게 배려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류정일ㆍ홍승완ㆍ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