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덕 · 현영희 · 최시중 등 운전기사 한마디에 줄줄이 낙마…‘보지도 듣지도 알려고도 말라’ 는 불문율 지키려하지만…

운전기사의 폭로에 정치거물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문그룹 7인회의 일원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MB 정부 들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로 부상했지만 “뇌물수수 정황을 담은 사진을 찍어뒀다”는 운전기사의 협박과 폭로가 있은 지 수개월 만에 철창 신세로 전락했다. 현영희 의원이 4ㆍ11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위해 새누리당 현기환 전 의원에게 공천헌금 3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도 운전기사의 결정적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측근 인사로 분류되던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 역시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기업인 운전기사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소문이 덜 했을 뿐 운전기사의 말 한 마디에 혼쭐난 기업인 사례도 많다.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고, 회사 돈을 자기 호주머니 돈인 양 제멋대로 쓰다가 운전기사의 폭로 협박에 굴복한 기업인들이 적잖다. A 기업의 한 대표는 회사 돈으로 정부(貞婦)에게 아파트를 사주고, 생활비를 대오다 관계가 틀어진 운전기사의 폭로로 불명예 퇴진해야 했다.

▶아는 게 많은 운전기사, 그들의 불문율= 수행기사들은 자신이 모시는 정치인이나 기업 대표이사 등 간부를 ‘대장’이라고 부른다. 수행기사들에게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바로 대장에 대한 얘기를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 직업정신이 투철한 운전기사들은 가급적 비밀을 알려하지 않고, 본의 아니게 보고 듣는 정보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1년째 대표이사 차량을 몰고 있다는 운전기사 B(49) 씨는 “대장이 만난 사람이 누군지,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 만나서 뭘 했는지 먼저 얘기해주기 전에는 절대 묻지 않는다. 대장이 전화통화를 할 경우 운전석 라디오 볼륨을 일부러 크게 틀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알게 된 정보라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대장과의 신뢰를 깨뜨리고 배신하는 행위로 스스로 간주한다.

하지만 하마평(下馬評:관리들의 인사이동이나 관직 임명에 대해 떠도는 평판이나 풍문 또는 첩보나 정보)이란 말도 높은 분을 모시던 가마꾼이나 마부들이 하마비 앞에서 주고받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일부 수행기사들은 불문율을 어긴 채 대장의 이모저모에 대한 ‘뒷담화’를 나누는 건 고금(古今)을 막론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기사는 내 식구, ‘불가근불가원’이 좋다?=‘비밀 폭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수행기사를 둔 대장들의 심정은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훗날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편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대장들도 나름의 원칙과 전략을 세운다.

금융업계 임원 김모(69) 씨는 운전기사와의 관계에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의 원칙을 지키는 편이다. 그는 “회사와 다소 갈등이 있을 땐 ‘회사 소속인 기사가 나를 견제하는 사람들에게 내 사적인 일정이나 약속까지 따로 보고하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감해진다”면서 “내 사람이 아니라 회사에서 고용한 사람을 수행기사로 두게 되는 경우 상대적으로 경계할 수밖에 없다. 아주 중요한 약속은 수행기사 없이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수행기사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철저히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대장들도 있다. 유통기업 사장인 임모(67) 씨는 현재 수행기사 B(45) 씨와 6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그 전 수행기사와는 15년을 함께했었다. 임 씨는 “수행기사는 단순히 운전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보다도 내 마음을 더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내 일정을 꿰뚫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다 알기 때문에 수행기사와 비밀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면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아도 눈치로 다 파악하는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간혹 비서나 수행기사들의 비밀 폭로가 세간의 이슈가 될 때면 농담 삼아 넌 그러면 안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한다”며 돈독한 우의를 과시했다.

▶수행 기사들의 ‘폭로’, 왜?=대장들의 이 같은 대비책에도 불구하고 때만 되면 운전기사의 폭로가 계속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전문가들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개인적인 감정’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직이나 기업의 비리가 아닌 모시던 사람의 비밀을 폭로하는 사례는 ‘내부 고발자’ 차원이라기보다는 개인 감정에서 비롯된 폭로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수행기사들의 경우 ‘폭로를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그간 쌓인 섭섭함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자신이 가깝게 보필했던 사람에게 기대치가 높게 마련인데 그에 상응하는 대접이나 배려를 받지 못하면 실망감도 배가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비리 폭로’가 잦은 현상이 사회 변화의 한 측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정’이나 ‘의리’보다 ‘합법’와 ‘정의’가 더 큰 기준으로 작용하고 ‘고발’과 ‘신고’ 문화가 발달된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도 변해가고 있다는 것.

현 교수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불법’은 용납지 않는다는 뜻이 되기도 되지만 그만큼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믿을 수 없다는 식의 ‘불신 풍조’가 강해졌다는 의미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직한 변화는 수용하되 신뢰하는 인간관계가 점점 사라지고 의심과 불신이 팽배한 사회로의 변화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유진ㆍ서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