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1. 6.25전쟁 당시인 1950년 7월 19일.

대전지역 화차에 적재된 군수물자를 회수하고 미 24사단장인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미 특공대원 33명이 대전 전투에 투입됐다. 이들의 작전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았고 이들의 생환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이들의 운송 수단은 기차였다. 기차 운전은 당시 28세였던 고 김재현 기관사가 맡았다.

작전 지역으로 접근 중 기차는 매복한 적들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았다. 세천역 부근으로 이동하던 도중 고 김재현 기관사는 북한군의 집중사격에 의해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순직했다. 죽는 순간까지 그의 손은 운전대를 놓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순직은 철도인들에게 모범이 됐다. 1962년 당시 철도청은 고인이 순직 직전 운전하던 구간인 대전~세천간 선로변에 동상을 세워 그의 뜻을 기렸다. 고인은 1983년 기차 기관사로는 최초로 서울국립현충원 장교 묘역에 안장됐다.

그러나 고 김 기관사의 죽음은 그동안 미국에 인정받지 못했다. 코레일이 지난 20여년간 미군 측에 고 철도인의 위상 제고와 김 기관사의 명예선양을 위해 그에 대한 의미있는 포상을 요구했지만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고 김재현 기관사, 26일 미 국방성 최고 훈장
고 김재현 기관사, 26일 미 국방성 최고 훈장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지난해 국방부 6.25사업 TF단이 이 건을 맡게 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국방부와 코레일은 미국 측 담당자와 여러차례 협조회의를 갖고 수차례 서신교환을 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올해 초에는 국방부에서 직접 미국을 방문해 고 김재현 기관사의 순직과 관련된 자세한 내막과 전투경과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미 국방성은 국방성 특별민간봉사상(Secretary of Defense Exceptional Civilian Service Award) 수여를 결정했다.

이 훈장은 민간인에게 주는 훈장 중 가장 격이 높은 훈장으로서, 고 김재현 기관사는 최초의 국내 수상자가 된다.

#2. 6.25전쟁 62주년이 되는 2012년 6월 26일.

한미연합군사령부는 26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드레곤 힐 2층 메자닌 홀에서 6.25전쟁 당시 딘 소장 구출 및 군수물자 탈환작전에참가했다가 순직한 고 김재현 기관사 유가족에게 미 국방성이 민간인에게 주는 훈장 중 가장 격이 높은 국방성 특별민간봉사상을 수여했다.

미 국방성을 대신해 존슨 한미연합군사령부 참모장 겸 미 8군 사령관, 샤프 전 한미연합군사령관 주관으로 서훈행사가 열렸다.

국방부 관계자는 “고 김 기관사에 대한 서훈행사는 주한미군 관계자와 국방부, 코레일의 끈질긴 노력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된 것인 만큼 한미 우호증진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며, 내년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정전협정 60주년을 앞두고 더욱 의미있는 행사였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군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철도직원의 2/3인 약 1만9300명이 교통부 산하 전시군사수송본부에 배속돼 병력, 군수물자, 피난민을 실어 나르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 중 287명이 전사했다.

sooha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