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류정일 기자]LG가(家)는 대대로 아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연암과 같은 회(會)자 돌림만 6명, 자(滋)자 돌림은 22명, 본(本)자 돌림은 연암 직계로만 13명에 달한다. 그러나 여느 대기업과는 다르게 ‘조용’하다. 심지어 GS그룹 허 씨 일가와 동업으로 이룬 기업인 데도 다툼이 없었다. 왜일까.

연암이 60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경영성과 중 으뜸은 인화단결, 개척정신, 연구개발로 요약된다. 이중 인화단결은 연암의 창업이념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계승되며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인화는 농경사회에서 가문의 성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만 연암은 가족간 인화를 산업사회 이념으로 성공적인 변모를 시켰다. 즉, 인화는 가족뿐 아니라 기업이나 사회, 민족과 국가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필요하다는 철저한 믿음을 경영관으로 꽃피운 것이다.

실제 연암은 창업 당시 회사가 작아 주로 가까운 사람들과 회사 운영을 하는 상황에서 서로 신뢰하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하자는 정신에서 인화의 이념을 도입했다. 그렇다고 어정쩡한 온정주의는 아니었다. 사전에 충분한 합의를 거쳐 원칙을 정해 놓고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하는 엄정한 책임의식이 전제된 것이었다.

창업회장의 철학은 대를 이어 계승됐고 LG는 지금도 재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LG화재를 시작으로 아워홈, LS그룹, GS그룹 등이 차례로 분리됐지만 집안싸움 한 번 없었다. 구 씨와 허 씨 두 가문의 인연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돈독하다.

정부의 ‘5대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정책’과 맞물려 계열분리의 신호탄이 된 1999년 LG화재 독립은 연암의 동생인 구철회 씨 일가가 원해 순조롭게 분가가 이뤄졌다. 아워홈의 구자학 회장은 한때 호텔신라 사장을 지내는 등 유통ㆍ서비스 분야에 관심이 많아 이견없이 분리해 나갔다.

2003년 말 분리된 LS그룹은 연암의 동생인 구태회ㆍ평회ㆍ두회 씨가 형님과 함께 창업공신이고 자녀들도 적지 않아 상황이 복잡했다. 특히 LS전선은 고 허준구 씨가 회장을 지내는 등 한층 복잡했지만 세 동생이 갖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나가면서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

가장 큰 변화였던 2005년 초 GS그룹 분리 역시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GS칼텍스, GS건설, GS홈쇼핑, GS리테일을 주축으로 한 GS그룹은 자산이 20조원에 육박했지만 연암과 동업을 했던 고 허만정 씨가 처음 사업자금을 댄 이후, 구 씨와 허 씨의 출자비율에 따라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인화가 빚은 미담 하나. 지난 1999년 LG와 LCD(액정디스플레이)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한 네덜란드 필립스의 크리스 털리 회장은 당시 합작 파트너로 LG를 택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 씨와 허 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 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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