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슈퍼마켓에 가면 ‘송새벽씨 닮은 것 같은데..’라고만 하시고 한 번에 알아보시지는 못해요. 처음엔 좀 씁쓸했는데 이제는 편하고 좋아요.”
아직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보다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며 배우 송새벽은 복잡한 웃음을 지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봐왔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차분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실제로 성격이 활달한 편이 아니에요. 그런 쪽은 ‘아부의 왕’ 동식이 캐릭터랑 닮아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요.”
연극판의 분위기가 좋아 연극을 시작한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로 스크린에 첫 선을 보였다. 그 뒤를 이어 드라마 ‘방자전’의 어수룩한 카리스마 변학도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첫 영화였던 ‘마더’의 세팍타크로 캐릭터가 기억이 자주 나죠. 아직도 현장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또 ‘방자전’의 변학도도 기억이 나요.”
‘방자전’의 변사또, ‘위험한 상견례’의 현준, 영화 ‘인류멸망 보고서’의 민서 삼촌 캐릭터까지 송새벽이 팬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다.
“캐릭터를 고르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아요. 다만 작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잘 풀어내느냐, 그 이야기 속 캐릭터가 어떻게 묻어나느냐를 보는 편이에요.”
# 아부?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송새벽은 지난 6월 21일 개봉한 ‘아부의 왕’에서 어눌하고 고지식한 평범한 직장인 동식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혀고수(성동일 분)를 만나 억대 연봉의 보험왕으로 거듭나며 거대기업 총수를 세치 혀로 휘두르는 아부의 귀재로 분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아부의 긍정적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아부’라는 단어가 ‘남의 비위를 맞춰 알랑거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자체만 봤을 때 상대방에 대한 배려잖아요. 물론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하겠지만, 남의 비위를 좋게 맞추는 점은 좋은 것 같아요.”
동식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송새벽의 언변은 매끄럽고 설득력 있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서로 좋은 아부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아부를 나누면 그 인간관계가 동글동글 해지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 그는 이미 관객들에 대한 아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 배우? 우리 시대 얼굴 같아 앞서 말했듯이 송새벽은 연극을 하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좋아 연극판에 발을 내딛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일련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배우는 한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고, 관객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울고 웃는 그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 매끄럽고 윤택하게 사실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의무감까지 생겼어요. ‘우리 시대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는 식의 ‘시대의 얼굴’ 같은 느낌이 들면서 이러한 것들을 좋은 이야기로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그런 느낌이 좋았고요.”
그는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사뭇 진지해졌다. 그의 얼굴에는 배우라는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일말의 후회도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 때나 연봉이 적을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텨야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또 이렇게 산다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럽지 않았어요. 연기자를 안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것 같아요.”(웃음)
# ‘혀 고수’ 성동일, 못지않은 김성령 송새벽이 표현하는 성동일은 ‘럭비공’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존재는 촬영장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성동일 선배님은 상대 배우에 대한 배려가 어마어마하신 분이에요. 촬영이 끝나고 그냥 가시지 않고 뭐라도 먹을 수 있게 챙겨주셔요. 사람을 너무 좋아하셔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셨어요. 작년 재야의 종소리도 같이 들었거든요. 관계성이나 현장에서의 배려가 정말 최고이신 분 같아요.”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성동일의 애드리브에 송새벽이 대담한 질문을 했다.
“한번은 ‘이번에는 어떤 애드리브를 치실 건지 알려주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결국 가르쳐 주시지 않아서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촬영했던 적이 있어요. 덕분에 현장에서 좋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이와 더불어 예지 역을 맡은 김성령의 입담도 만만치 않다.
“성동일 선배님과 김성령 선배님의 촬영 장면에서 김성령 선배님께서 ‘현빈이 들어온 줄 알았네’라고 하시자 성동일 선배님이 ‘미스코리아 출신인 줄 알았네’라고 응수하시는거에요. 원래 대본에 없던 대사였는데 적재적소에 애드리브를 날려 주시는 것 같아요.”
한 입담들을 하는 배우들이 뭉친 ‘아부의 왕’에서 송새벽이 얻은 경험들은 결코 적은 것들이 아니다.
“처음에는 ‘아부’라는 소재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게다가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젊은 인물 동식이가 혀고수나 다른 인물들을 만나 변화되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어요. 직장 생활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전에 대기업에 있었던 감독님과 주변 지인분들에게 조언을 구했죠.”
일각에서는 그가 너무 코믹적인 캐릭터에만 치중하지 않느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송새벽은 명쾌한 답을 했다.
“제 자신이 그 장르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좋고 메시지가 맘에 들면 어떤 장르의 캐릭터도 상관 없어요. 물론 이번 작품에서는 러브라인이 너무 짧았는데, 멜로 장르도 너무 하고 싶어요.”
송새벽은 아직 연극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묻는 질문에 그는 “그 질문은 한 10년 뒤에 다시 해주세요”라며 겸손의 뜻을 내비췄다.
걸어왔던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훨씬 많이 남아있다. 숨가쁘게 달려온 것이 아니다. 송새벽은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왔을’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하지만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요. 정말 대단하신 분들 같아요.”
아직 배우 송새벽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그의 모습은 항상 새롭고 신선하다. 앞으로 그가 선보이게 될 다양한 모습에 귀추가 주목된다.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