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진주)류정일 기자]경남 진주시에서 차로 20여분을 달리면 닿을 수 있는 지수초등학교. 학교 교정에는 이곳 교목(校木)인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마치 한 뿌리에서 난 것 같은 모양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바로 옆에 심은 두그루가 하나로 합쳐져 2층 교사(校舍)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큰 키에 청명한 자태를 자랑한다.
소나무와 교사를 병풍처럼 감싼 산은 방어산으로 진주시 지수면과 함안군 군북면에 걸친 해발 530m로 높지 않다. 산 전체를 감싸 안은 소나무 숲이 일품이지만 능선 굴곡이 남성적이고 정상에는 장군대로 불리는 큰 바위가 자리해 땅의 기운이 뭉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 소나무, 소위 ‘재벌송(財閥松)’으로 불리는 교정의 이 소나무는 90년전인 지난 1922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과 LG그룹 창업회장인 연암 구인회가 함께 심었다고 한다. 1907년생으로 이곳 토박이인 연암은 학교 앞 작은 신작로 너머에 생가가 있어 걸어서 5분이면 족히 교실까지 닿을 수 있었다. 연암은 한학(漢學)을 배우다가 1921년 2학년에 편입해 1924년까지 다녔고, 집이 의령이고 연암보다 3살 어린 호암은 1922년 6개월간 지수초등학교를 다녔다.
1922년 그해 출석부에 연암은 6번, 호암은 26번이었다고 하니 같은 반에 재학했던 어린 시절 두 거인이 무슨 생각으로 소나무를 심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제 두 창업주를 직접 기억하는 사람이 어느 누구도 생존에 있지 않아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1957년 양가는 혼사(연암의 삼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호암의 차녀 이숙희 씨)로 사돈까지 맺었지만 후일 전자사업에서 경쟁하면서 애증의 관계를 이어갔다. 연암은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창업하고 최초의 국산 라디오를 생산했고 1965년 냉장고, 이듬해 흑백TV를 출시하며 성공가도를 이어갔다. 이에 호암도 1969년 삼성전자공업을 세워 경쟁에 나서 1980년대부터 반도체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선두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호암과 연암, 두 창업주는 최근 미국 소비자가전협회(CEA) ‘명예의 전당’에 나란히 헌액됐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의 불모지에서 창조력, 결단력, 끈기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한국의 전자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로서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소나무 옆에 같은 시기 심어진 한그루의 소나무가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곳 토박이라는 한 인근 주민은 “4~5년전 시들고 말라서 죽어버려 베어 버렸다”며 “연암, 호암과 함께 공부한 효성그룹 창업주가 심었던 것으로 주민들은 전해듣고 그렇게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1906년 방어산 너머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난 효성그룹 창업주 만우 조홍제는 1913년부터 향미란 곳의 한천제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1922년 상경한 뒤 중동학교를 졸업해 실제 지수초등학교와는 인연이 없다고 효성 측은 설명했다.
경남 의령군 남강의 솥바위를 중심으로 근방 20리 안에서 나라를 움직일 국부(國富)가 3명이나 태어날 정도로 지세(地勢)가 좋다는 풍수지리 전문가들과 호사가들의 입담이 현재 해당 그룹들의 사세에 빚대어 만들어낸 ‘촌극’의 입담인지도 모를 일이다.
1921년 개교한 지수초등학교는 연암을 비롯, 연암의 동생들과 GS그룹의 허 씨 일가 등 432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학생 수가 줄면서 2009년 3월1일자로 인근 송정초등학교로 통폐합되며 폐교됐다. 부자의 기운을 받기 위해 외지인들이 가끔 찾는다는 이 소나무. 온갖 역경을 딛고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낸 창업주들의 정신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한결같은 푸르름으로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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