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문명과 수학’으로 방송상 휩쓴 김형준 PD
공식 조합 아닌 신학·철학 등 쉽게 접근 동양수학과 중국수학도 따로 찍고 싶어
‘수학의 정석’을 다시 펴고 싶어진다. 중ㆍ고등학교 시절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났더라면, 수학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무작정 수학책을 덮어버리거나 수험용 공식만 달달 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을…. EBS 다큐프라임 5부작 ‘문명과 수학’의 시청 소감은 대개 이렇다. “수학은 존재하는 모든 비밀스런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프로그램 속 정의처럼 수학이 단순한 공식의 조합이 아닌 신학과 철학과 맞닿아 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지난해 12월 방송된 뒤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이 다큐멘터리는 올 들어 2012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 등 주요 방송상을 휩쓸었다. 최근엔 수학자단체인 대한수학회로부터 방송사 PD에겐 이례적으로 특별공로상이 주어졌다.
수상자인 김형준(42) PD는 “처음부터 시청 목표를 수학을 저처럼 싫어하는 사람으로 잡았고, 수학에 대한 흥미를 끌어주는 역할만 하자 했죠. 수학에 담긴 ‘내용’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김 PD를 비롯한 제작진은 이를 위해 고대 이집트, 그리스 아테네, 인도 등 시대와 문명을 두루 훑어 수학의 기원을 찾는다. 기원전 1650년께 ‘아메스 파피루스’의 문제를 당시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의 임금(빵) 나누기 이야기로 풀어낸다. 유클리드의 원론에서 기하학의 시작인 ‘점(點)’을 정의하고, 사고의 주춧돌이 되는 ‘공리(公理)’, 그로부터 논리를 풀어가는 방식은 미국 독립선언문의 논리구조와 일맥상통함을 발견한다.
“마트에서 계산하기 위해 수학을 배우는 건 아니죠.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고하는 논리의 구조가 거기서 출발하기 때문이에요.”
김 PD는 수학과는 거리가 먼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1997년 EBS에 입사해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 세계테마기행 등의 연출과 기획을 담당했다. 자연에서 숫자의 이치를 찾는 다큐멘터리 ‘생명의 디자인’을 연출한 뒤로 수학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수학만을 주제로 프로그램 100편은 더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무리수’만으로도 재밌는 이야기가 많고, 이번에 많이 다루지 못한 동양 수학과 중국 수학도 따로 찍고 싶어요.” 차기 다큐멘터리는 상대성 이론 이후의 물리학에 대한 주제로 준비 중이다.
교육방송 PD이자 ‘수학 전문(?)’ 다큐멘터리 연출가의 자녀 교육은 어떻게 다를까. 김 PD 가족은 서울 우면동 아파트에서 살다 최근 삼청동에 있는 한옥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대문만 열면 한걸음에 달려가 운현궁, 경복궁 등 고궁 문화를 수시로 체험할 수 있도록 주거 환경을 바꾼 것이다. 대신 강남의 사교육은 포기했다. “아이들이 박물관에서만 보던 한옥에서 실제 사람이 살 수도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신기해하더군요. 아파트에선 주말이면 차 타고 공원이라도 가야 아빠로서 할일을 다하는 건데, 삼청동에선 일단 뛰어놀 게 많아서 아버지 노릇 한 거죠.”
한지숙 기자/jshan@heraldm.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