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九州)의 최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 현은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느낌은 다르지만 통영이 ‘한국의 나폴리’라면 가고시마는 ‘일본의 나폴리’로 불린다. 코발트 빛 태평양이 오히려 잔잔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일본이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요즘 규슈 여행객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규슈의 최남단 가고시마도 인기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가고시마에서는 일본의 웬만한 시골처럼 한적하게 여행을 하며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기고 싱싱한 바다회를 맛볼 수 있고, 바쿠후(幕府) 시절과 메이지(明治) 유신 시기의 흔적을 접할 수 있다. 다른 지방과 차별화된 볼거리는 지금도 화산 활동으로 연기를 내뿜고 있는 사쿠라지마 활화산 정도다.

그런데 작은 고장인 가고시마가 일본을 근대화시킨 메이지 유신 3걸 중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그의 친구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등 무려 2명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일본의 근대화는 대륙 침략, 한반도 침략 정책과도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사이고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하기도 했다.

하급 무사 출신인 사이고는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일등공신이다. 막부 시대에는 중앙집권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막부로부터 영지를 인정받아 자치권을 행사하는 수많은 다이묘(大名)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사이고 등이 봉건적인 막부 체제를 종식시키고 근대의 시작인 왕 중심의 새로운 통일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사이고는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맞먹는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가고시마 현 곳곳에는 사이고의 동상과 유적이 있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도 개를 끌고나온 모습의 사이고 동상이 있지만, 가고시마에는 사이고의 이야기를 빼면 뭔가 허전할 정도다.

사이고는 일본 남자의 평균 신장이 145㎝ 정도였던 당시 180㎝가 넘는 거구였으며 부리부리한 눈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사무라이 대장 가쓰모토 영주는 사이고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한다. 그가 중앙정부와 맞서 싸운 세이난 전쟁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 시로야마(城山) 언덕의 동굴은 일본인에겐 성지와 같은 곳이다. 특히 ‘비극의 히어로’라는 스토리텔링을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인에게 사이고는 적당한 ‘다크 아이돌’이다.

사이고가 지방에서 아무리 힘이 있는 무사라 해도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유신 3걸’ 중 또 한 사람인 야마구치 현의 쟁쟁한 무사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와 동맹을 맺어 힘을 합쳐 막부를 공격했다.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들을 연합시키는 일은 사카모토 료마(板本龍馬)가 맡았다. 사카모토가 일본 근대화의 영웅으로 일컬어지게 된 이유다. 또 전후 최고의 소설가로 인정받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의 주인공이 돼 NHK에서 집중 조명받을 수 있었다.

사카모토는 일본에서 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간 첫 번째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19세기 중엽 그가 신혼여행을 갔던 기리시마 온천이 가고시마에 있다. 사카모토는 이곳에서 사이고를 만나 두 무사를 중재했다. 막부 시절에는 행정구역이 지금의 현(縣)이 아니라 제후가 통치하는 영지를 말하는 번(藩)으로 불렸다. 가고시마는 사쓰마번, 야마구치는 조슈번으로 각각 불렸으며 사카모토가 주선한 이들 간의 동맹을 ‘샷조동맹’이라 한다.

메이지 유신 3걸은 모두 메이지 신정부의 요직에서 일하다 40대의 나이로 정적에 의해 제거되거나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조슈번의 수장인 기도 다카요시에 이어 조슈번의 실권을 장악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유신 2기의 실세로 부상, 일본의 초대 내각대신으로서 조선강제합병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사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역사다.

그런데 일본은 기껏해야 국가도 통일하지 못하고 수백명의 다이묘들이 싸우던 시절이 불과 얼마전인데 어떻게 조선을 강제 침탈할 수 있었을까? 18세기 영ㆍ정조 시대만 해도 조선이 더 근대화된 국가가 아니었나?

여행지에서 해답 하나가 나왔다. 가고시마는 인근의 나가사키와 함께 무역과 상업이 크게 발달한 교역의 거점이었다. 왜구의 본거지기도 하다. 왜구나 북유럽의 바이킹이 성업했다는 사실은 상선의 왕래가 잦았음을 의미한다. 외국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는 ‘오픈 마인드’ 정신도 지니고 있다. 당시 오쿠보와 이토 히로부미 등은 토목, 건축, 행정, 화폐제도 등 신문물을 익히기 위해 구미로 시찰을 나가 배워왔다. 구미 열강들이 식민지 개척을 위해 동양으로 향하던 때이기도 한 그 당시 조선은 폐쇄적인 정책을 썼으니 세상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기에 끌려온 도공 박평의와 심수관도 가고시마에서 자리를 잡았다. 박평의의 후손인 박무덕은 조선총독부 청사의 설계자문을 맡은 게오르그 라란데의 부인이었던 에디타를 만나 결혼했다. 일본이 독일의 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외무대신을 지내며 전쟁외교를 담당해 전범으로 구금됐다. 그의 생가에 가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심수관은 15대째 이어져 오며 여전히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세계적인 ‘사츠마야키(燒)’를 만들어낸 심수관가(家)에 가면 20여명의 도공이 지금도 명품 도자기를 빚고 있다.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고 말하는 15대 심수관은 선조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도 가끔 온다고 한다.

<가고시마=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m.com

◆가고시마 여행가이드-사쿠라지마, 센간엔, 쓰루마루 성터,레이메이칸, 이부스키, 후루사토, 기리시마

가고시마 최고의 명소는 지금도 모락모락 연기를 뿜는 화산섬 사쿠라지마다. 처음에는 섬이었지만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용암 분출로 섬 한쪽이 규슈 본섬과 연결됐다. 분연을 내뿜는 지점은 미나미다케(南岳)다. 가고시마항에서 페리를 타고 15분이면 도착한다. 승용차나 버스도 실어준다. 사쿠라지마에 내리면 먼저 용암해안공원 입구에 자리잡은 길이 100m의 족욕탕에서 피로를 풀고 화산 중턱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게 좋다. 외지인들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여기저기를 구경하는데, 그곳 사람들은 뿌연 재가 날아와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재가 많이 날리는 날에는 학생들이 화산석이 떨어질 것에 대비, 노란 헬멧을 쓰고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대형 무와 초소형 귤이 이곳의 특산물이다.

사쿠라지마를 멀리서 한눈에 보려면 가고시마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시로야먀 전망대로 가면 된다. 부산의 용두산 공원 같은 느낌을 준다. 해발 107m로 높지는 않지만, 눈앞에는 가고시마 시가지와 바다 건너 사쿠라지마가 펼쳐진다. 긴코만도 한눈에 들어온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카메라로 풍광을 담기에 바쁘다. 야경 명소로도 추천할 만하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센간엔’도 꼭 찾아가야 하는 명소다. 이 지역 영주였던 시마즈 마쓰히사가 지은 별장이다. 아름답게 꾸며진 일본식 정원과 정원 뒤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쓰루마루 성터에는 집은 없고 해자와 돌담, 돌다리 등이 남아 있어 산책코스로도 좋다. 성터 안에는 시립미술관과 현립박물관 등이 있으며 레이메이칸은 가고시마의 역사와 민속 공예를 볼 수 있는 문화 박물관이다.

가고시마의 최남단에 있는 이부스키는 지하의 온천수에 의해 달궈진 해변의 검은 모래로 몸 전체를 덮어주며 천연모래찜질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유카타를 입고 모래에 누우면 직원들이 삽으로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묻어준다. 10분 정도만 있어도 뜨거워져 온몸에 땀이 난다. 이부스키(指宿)는 과거 저명한 무사가 이 일대를 돌다 경치가 좋아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하룻밤을 묵자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 바로 옆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후루사토 노천온천도 이용할 만하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인 기리시마는 일본 건국신화가 깃들여진 곳이다. 웅대한 자연 속에 온천마을이 있고 등산로도 개방돼 있다. 기리시마 신궁은 이곳의 상징이다.

가고시마의 먹을거리로는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흑돼지 샤브샤브와 돼지갈비를 생강 등의 재료와 된장을 넣어 푹 끊인 돈코쓰(돼지뼈요리)가 있다. ‘기비나고(샛줄멸치)’ ‘사쓰마아게(어묵)’에 가고시마의 명물 고구마소주를 곁들이면 좋다. 한국과 가고시마는 가끔 전세기를 운항하며, 비행기 또는 배로 후쿠오카에 도착해 신칸센을 이용하면 가고시마 중앙역까지 갈 수 있다.

모두투어(1544-5252) 등 여행사에서 다양한 가고시마 패키지상품들이 나와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서울사무소(02-777-8602)에 문의해도 된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m.com>

<사진제공=가고시마현,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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