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2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17
이 세상 사물을 전기가 통하는 기준으로 분류하여 본다면 전도체, 반도체, 부도체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부도체가 나무토막, 유리, 섬유 등등이라면 전도체는 쇠붙이, 물 따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분류한다면 신희영은 확실한 전도체, 그중에서도 으뜸에 속하는 구리기둥과 별로 다름없었다.
“옷 벗고 대중 앞에 선다는 게 어쩜 이토록 짜릿짜릿할까요? 온몸에 수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아요.”
“나도 그렇소.”
“안에서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통유리지만… 확실할까요? 밖에서는 거울처럼 보이는 게? 설마 거짓말은 아니겠지요?”
“확실해요. 만약에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인다면… 우리 둘은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물 쇼나 샤워 쇼를 벌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게요. 저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사방에서 모여들어 사진 찍느라 난리 날걸요?”
“물 쇼? 샤워 쇼? 잠옷 입고 춤추는 여자에게 물 뿌리는 유치찬란한 쇼? 변두리 3류 나이트에서 가끔씩 뱀 쇼를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물 쇼가 열리는 날엔 매상이 두 배로 뛴답디다.”
“하여간 어수룩한 짐승들예요, 남자란.”
물론 신희영이, 비치는 유리인가 아닌가 따위로 걱정할 여자는 아니었다. 사방으로 탁 트인 통유리… 아니, 욕실 벽면 유리 앞으로는 숱한 행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전혀 이쪽 상황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 여겨지니 더욱 만만했다.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커다란 육면체의 통거울이 스르륵 밖으로 밀려나온 것으로만 보일 텐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보이니? 내 알몸이 보여?’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행인들이 다가와 유리면 옆을 스칠 때마다 본능적으로 몸이 움찔거리는 건 뭔 까닭인지.
“우리만 행인들을 볼 수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저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기만 하면 오금이 저릿저릿한 게….”
“그러게 말이오. 나도 그렇소.”
강준호는 추임새를 넣듯이 ‘나도 그렇소’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감격에 겨워 욕실로 뛰어 들어와서 막상 신희영의 알몸을 끌어안긴 했지만 백주대로상에 둘이서만 옷을 벗고 서 있는 것 같아 자꾸 몸이 움츠러들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면 동물보호단체인가 뭔가에 소속된 회원들이 가끔씩 나체로 시위하는 것도 이해가 가요. 자기들 스스로 즐기는 것인지도 몰라.”
“그럴 리가 있겠소? 진정으로 우러나서 하는 일이겠지.”
“진정인 것은 알지만 그 와중에도 짜릿짜릿한 전기요법을 엔조이하는지도 모른다는 말예요. 아이쿠! 짜릿해라. 저 남자가 여길 계속 들여다보고 있네.”
“신경 쓰지 말아요. 거울인 줄 알고 이빨 쑤시는 거니까.”
“놀래라, 애 떨어질 뻔했네.”
안개처럼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물에 젖은 신희영의 머리칼이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팔선녀가 내뿜는 여덟 갈래 폭포 틈으로 매끈한 그녀의 몸이 들락날락, 자동으로 분사되는 바디크렌저의 거품이 어느새 무릎까지 차올라서… 그녀는 어느새 지중해의 거품 위로 몸을 드러낸 아프로디테 여신처럼 변해가는 중이었다. 오후 세 시쯤이나 되었을까? 사각으로 빗겨 들어오는 모나코의 태양빛은 허약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반사광만으로도 신희영의 젖은 몸은 반짝이며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여자의 몸은 참으로 신비하군. 똑같은 몸인데도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져요.”
강준호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바디크렌저의 거품 때문인가? 그녀의 알몸이 기름 바른 것처럼 미끈! 위로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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