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2회> 열망을 품은 도전 35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을 보며 늦가을의 정취에 빠져있기도 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어느덧 겨울이었다. 라제니 골프장에서 청춘의 끝자락을 불사르던 신희영과 강준호는 추워진 날씨 때문에라도 더이상 누드골프를 칠 수 없었으나 그 사실이 못내 서운하기만 했다.
“한동안 옷을 벗고 초원을 활보했더니 야생동물이 된 것 같아요. 다시 옷을 껴입으니 만사가 불편하기 짝이 없군요.”
“그래서 루소 선생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나 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나온 날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해요. 서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쏘다녔는데 어쩜 여자로서의 욕구를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을까?”
“여자로서의 욕구? 성욕… 그런 거?”
“이를테면.”
“허, 참. 그건 나를 심하게 모욕하는 말과도 같군요. 언제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섹시하게 여겨진다더니.”
하지만 사실이었다. 사실이기도 하면서 서로 동일하게 느낀 감정이라고나 할까? 강준호의 경우엔 오히려 신희영보다 무감각의 농도가 더 짙었을 것이다. 5초? 그녀가 옷을 홀랑 벗고 처음으로 필드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5초 정도 아랫도리에 반응을 느꼈을까? 그 이후로는 그녀의 벗은 몸을 보며 오히려 서글픔을 느끼곤 하지 않았던가. 육(肉)은 슬프다는 사실… 그녀야말로 라제니 골프장의 드넓은 필드를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 쇄락한 짐승으로만 여겨질 따름이었다.
“씨 마켓 올~쏘우. 볼 장 다 봤기 때문이란 뜻이지요.”
신희영은 잿빛으로 찌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 한 마디에 강준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야 말았다. 볼 장 다 봤다고? 벌써? 그렇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겨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줄 알았는데…
“아주 정상적이고 건강한 반응입니다. 원래 사람의 눈이 간사스럽기 때문이지요. 시내 한복판에서는 미니스커트 입은 아가씨만 봐도 정신 못 차리지요. 하지만 수영장에서는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도 무덤덤한 것과 같은 이치예요.”
강준호는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말은 그럴싸하게 내뱉었지만 가자미처럼 곁눈질을 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는 이른바 애정의 함수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녀가 관리하는 어장에는 물 간 생선 한 마리와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는 걸 어찌 모를까. 물 간 생선이 자기 자신이라면 싱싱한 물고기는 바로 한승우 실장이라는 걸 어찌 모른다 할 수 있을까.
‘신희영… 네가 홍어 맛을 알아?’
강준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한 번 홍어에 맛을 들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싱싱한 생선이라고 한들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란 사실. 애정의 삼각그물에 걸려든 물 간 생선의 심리적인 자신감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신희영에게 푹 삭은 홍어의 참맛을 느끼도록 해주어야만 할 판이었다. 강준호는 전술전략적인 면에서는 아직까지 한승우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승우는 멀리 발랑스에 가 있지만 자기는 그나마 신희영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으니 지금 당장에라도 홍어의 향기를 발휘해야만 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신 여사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만사 젖히고 푹 쉬다 갈까요?”
그는 열흘 안에 신희영에게 홍어의 참맛을 느끼도록 해줄 요량이었다. 남부 프랑스에도 캬바레가 있겠지? 낮엔 신나게 캬바레를 찍고, 저녁마다 술을 왕창 먹이고… 밤이면 침대 위에서 홍어의 참맛을 보여주어야지. 까짓 거 열흘 안에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어. 그러나… 신희영의 생각은 전혀 딴판이었다.
“그럴 틈이 있나요? 몬테카를로 랠리가 곧 시작될 텐데. 어서 한승우 실장에게 전화 좀 넣어서 방부터 잡아놓으라고 하세요. 한승우 실장…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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