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8회> 열망을 품은 도전 31
권도일이 이토록 쓸쓸하고 착잡한 심정에 빠져있는 동안 유호성은 그야말로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황홀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번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하던 날부터 이미 현실적인 소공자로 거듭나 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흐리잖아, 머신 관리 좀 잘 하라고요.”
이렇게 운을 떼기만 하면 랠리 카의 이동에서부터 유지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기술요원들이 호떡집에 불이나 난 것처럼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날마다 버터 바른 빵만 먹자니…”
대충 이렇게 얼버무리기만 해도 숙박이나 해외출장 잡무는 물론 의료지원을 맡고 있는 총무요원들이 꼬랑지에 불붙은 강아지들처럼 난리를 치곤했던 것이다. 하긴 모나코의 소공자로 거듭난 유호성이 어쩌다가 설사라도 하게 되는 날엔 유민 회장에게 즉각 보고될 터이고, 그렇게 되면 줄줄이 사표를 쓰게 될 것이 뻔했으니…
“한국말로 된 신문 좀 없어요?”
유호성이 이렇게 한 마디 하면 즉시 한국어판 신문이 그의 코앞에 놓이곤 했지만… 등 뒤에서는 지원팀 요원들 간에 알력다툼도 끊이질 않았다.
“신문! 신문은 광고나 홍보를 맡은 마케팅 요원들이 책임져야 할 거 아니오?”
“무슨 소리야? 신문을 찾아오라고 하신 게지 신문에 기사를 내라고 하신 거요? 당신 홍보가 뭔지 알기나 해? 신문 찾아오는 건 총무요원들 몫이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유호성은 근래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 흡족하기만 했다. 조선시대 어느 왕인들 이처럼 호강스러운 나날을 보냈을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을 꼽으라면 랠리 중계방송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감동 스토리를 꾸며보라는 아버지 유민 회장의 명령일 뿐이었다.
“진짜 아버지 고집 때문에 미치겠어요. 내가 작가야? 감동 스토리를 꾸미게?”
그는 코-드라이버 전진후에게 이렇게 불평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전진후야말로 랠리 실력은 뛰어났으나 여태껏 언론의 조명을 받아본 적 없는 무명 선수 아니었던가. 그러니 전진후로서는 이번 랠리를 감동스토리로 꾸며 화려하게 방송에 내보내겠다는 유민 회장의 복안이 무척이나 흡족했던 것이다.
“아니, 유명인사로 만들어주겠다는데 그깟 소설 한 편 못 씁니까? 지겨우면 냅두슈! 내가 폼나게 스토리를 꾸며보지요. 호성 씨는 헬멧에 카메라나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
“오라, 진후 형이 스토리텔링을 하겠다고? 좋아요. 어떻게 꾸미려고?”
“그러니까… 보자. 랠리 초반부엔 당신이 나서는 거요. 얼음판 길을 팍팍 몰아 달려 나가는 거지. 그러다가…”
“신나는 군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중간에, 예를 들면 강물이나 사막 같은 곳에서 발랑! 뒤집어지는 거지. 요절이 난단 말이야. 그때 내가 정의의 사도처럼 나서는 거요.”
“뭐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결말을 내려고요?”
“생각해 보시오. 랠리 중간에 드라이버가 요절이 났단 말요. 난 뭐냐? 코-드라이버지. 이를테면 조연이란 말인데… 요절난 당신을 부축해가면서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걸로 끝이요. 옛날 영화이긴 하지만 맨발의 청춘이란 영화 봤어요? 신성일이 주인공이야. 그런데 영화 도중에 죽어. 그때 조연이던 트위스트 김이 멋지게 나서지요. 거적을 덮어 쓴 신성일을 리어카에 태우고 맨발로 끌고 가던 그 장면… 죽이지!”
“뭐라고요? 주인공이 요절이 나?”
이런 젠장… 유호성이 김샜다는 듯이 양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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