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8

HANS 시스템을 고정시키고 나니 권도일의 심정은 마치 독일로 팔려간 광부와도 다를 바 없었다. 하루 두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 힘 좋은 젊은이들은 많았어도 일자리는 없던 그 시절에, 우리나라 청년들은 머나먼 독일까지 진출해 광부로 취직했던 시절이 있었다. 취업 첫날, 후두부분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독일식 안전모를 뒤집어쓰던 우리 젊은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목만 부러지지 않으면 돼. 비록 사지가 절단되고 온 몸이 걸레처럼 너덜대는 한이 있더라도 머리만 붙어있으면 끝끝내 달릴 수 있을 거야.”

세월이 변하고 처지가 바뀌었어도 비장한 심정은 다를 바 없었다. 그래, 죽도록 달려보는 거야…

“도일 씨, 원래 이 차는 전륜구동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후륜구동이 되도록 개조했거든요. 확실한 드리프트를 구사하기 위해서 바꾼 건데… 오늘 그 성능 테스트를 해볼 거예요. 혹시 무리가 따를지 모르니 각자 알아서 조심하자고요.”

현성애는 드디어 기어를 2단으로 바꾸며 독립차고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비탈길을 치닫기 시작했다. 불에 타고 군데군데 찌그러진 흔적이 있는 치타의 껍데기는 연약하기 그지없을 터였다. 엔진은 업그레이드시켰지만 형태를 이루는 녹슨 철판 자체엔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았으니, V8 6000㏄에 500마력이 넘는 힘으로 달리다가 전봇대라도 들이받는 날엔 온전히 살아남기가 힘들 판이었다.

“계란 껍데기 속에 앉아있는 기분이군.”

“왜요? 불안해요?”

“솔직히 말하면… 불안하지. 회장님 고집도 어지간해. 어째서 불에 타고 찌그러진 형태를 새롭게 바꾸지 못하게 하는 걸까?”

“잊지 못할 아픔이 있잖아요. 사막에서 이 차를 몰다가 죽은 친구를 기억하자는 거겠지요. 우리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날, 회장님은… 중계방송을 보면서 죽은 옛 친구를 떠올리실 거예요. 이 차 밑에 깔려 숨을 거둔 그 친구를 말이지요.”

“회장님의 여린 감성 때문에 우리만 곤경에 처하는군.”

“곤경은 무슨 곤경예요? 철판이 계란껍데기처럼 얇다고 해서 무작정 부서지지는 않아요. 과학적으로 가장 단단한 형태가 달걀형태라고요.”

“이 차가 달걀 형태로 만들어지진 않았잖아.”

“그냥, 달걀처럼 만들어졌다고 여기세요. 그리고 내 드라이빙 실력만 믿으세요.”

“그래도 그렇지… 남에게 쪽 팔리기도 하고.”

“쪽팔려요? 낡은 차를 모는 게 부끄럽다고요? 그럼 지금부터 마음을 다스리세요. 우리는 지금 검볼랠리에 참가하는 중이라고 여기면 그뿐예요.”

검볼랠리란 해외의 백만장자 거부이면서 자동차 광들이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각국을 도는 행사를 뜻한다. 이를 테면 거의 100명에 달하는 백만장자들이 매년 포르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3000여마일을 행진하는 모임인데, 근래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로스엔젤레스를 거친 후 중국으로 넘어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행사를 마감하기도 했다. 중국으로 이동할 때 100대가 넘는 고급 자동차들을 항공기로 직송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기도 했으며, 2008년의 경우 미국 TV드라마로 잘 알려진 배우 ‘데이비드 하셀호프’와 그의 극 중 자동차 ‘키트’가 함께 등장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알았어요. 우린 달걀 속에 있는 것이로군. 현성애 씨는 노른자, 나는 영양가 없는 흰자위… 대충 그렇게 생각하라는 거로군요.”

“제발, 어린애처럼 징징거리지 말아요. 이제 고속도로로 접어들기만 하면 총알처럼 쏠 테니까 과속 범칙금 낼 계산이나 잘 하시라고요.”

어느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가.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더니 서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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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