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88회> 날개에 숨긴 칼 48
“전 세계인이 몰려드는 국제 오토싸롱인데… 37년 전에 생산한 낡은 차를 전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거성그룹의 재벌 2세가 코엑스 태평양 홀의 입구로 들어서며 다시 한 번 물었다. 태평양 홀에서는 세계적인 슈퍼카와 유명 레이싱 모델들이 총출동하는 애프터마켓과 튜닝산업 전시회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토싸롱이라 불리는 그 전시회는 국내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었다. 예상 관람객으로 50만 명을 예측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해외 바이어만 3만 명이 몰려 올 것이라 예상되는 엄청난 전시회였다.
“역발상입니다. 아울러 곧 열리게 될 5대륙 관통 랠리를 직접 PR한다는 본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종호 상무는 두 손바닥을 엉덩이에 착 가져다 붙인 채로 대답했다.
“역발상이라고요? 남들은 하이브리드 차에 전기차, 심지어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까지 전시하는 판인데, 겨우 깡통 수준의 낡은 차를 전시하는 것이 역발상이란 말입니까?.”
“회장님 뜻이기도 합니다. 원래 오토싸롱이란 것이 자동차 튜닝문화를 대중화하고 튜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서 마련된 축제이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 회사의 1호차인 치타를 전시하고 싶다는 뜻을 내보이셨습니다.”
“치타를 전시하는 것이 아버님 뜻이란 말이지요?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저길 보세요. 평소에는 보기도 힘든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포르세… 남들은 저렇게 번쩍거리는 차들을 내놓았는데, 우리는 껍데기마저 불에 그을린 똥차를 전시한다니 이해가 가질 않아요.”
태평양 홀에는 수많은 관계자들이 이미 북적거리고 있었다. 전시회가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전시물품을 고정하고 조명을 설치하느라 분주한 까닭이었다. 특히 레이싱 퀸 선발대회와 레이싱 모델 포토 이벤트가 열리게 될 공간에는 쭉 뻗은 레이싱 모델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오가며 행사에 따른 예행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회장님께서는 이번 랠리에 동승할 코 드라이버로 여자 선수를 기용하는 것이 좋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어차피 레이싱 결과는 염두에 두지도 않으니 광고효과나 기대해 보자는 뜻인 것 같습니다.”
마침 1974년 산 치타를 전시할 부스에 다다르자 도종호 상무가 또다시 회장의 뜻을 2세에게 전했다.
“국제적인 오토싸롱에는 낡은 똥차를 전시하고,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5대륙 관통 랠리에는 드라이브 실력 여부도 모르는 여자를 코 드라이버로 내세운다니… 도무지 아버님의 뜻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모두 큰 놈을 얻기 위한 은밀한 마케팅의 일환입니다. 어차피 5대륙 관통 랠리에서는 입상할 생각도 없으신 겁니다. 회장님의 뜻은 1974년 산 똥차를 튜닝해서 완주하는 쪽에 목표 설정을 하신 것이지요.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등의 명차와 경쟁을 벌이는 똥차! 당연히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더구나 코 드라이버로 어여쁜 여자를 기용하면 금상첨화지요.”
“그렇게 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게 핵심입니다. 1974년산 치타는 지금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는 크리스뱅글이 업계에 데뷔하기 전에 설계한 작품입니다. 이를테면 크리스뱅글을 감동시키자는 전략이지요. 전 세계 언론에 크리스뱅글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그가 감동에 젖어있을 때 우리 회사로 불러들이자는 계획입니다.”
“아! 그런 전략을 담고 있었군요.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랠리에 사용할 자동차로 1974년 산 치타를 꼽으신 게로군. 이번 오토싸롱 마저도 5대륙 관통 랠리의 광고마당으로 활용하시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권도일 전무만 불쌍해졌네. 그 양반은 기필코 랠리에서 우승하겠다고 이를 가는 모양입니다만.”
재벌 2세는 이렇게 말하며 치타가 전시될 부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엔 권도일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며칠 전 출근길에 만나 회사까지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눈 권도일로부터 마치 투사와도 같은 혈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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