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 정점에서 매수행진…

올 4월이후 4조 넘게 매수

외국인 3조대 매도와 엇박자

유로존위기·美 더블딥 우려

추가 상승동력도 불투명

장기투자 할 여력 없고

고물가·가계빚 등 사면초가

일명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의 덫에 또다시 걸려들고 있다. 고점 부근에서 증시에 휩쓸려 들어갔다가 주가 하락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 금리인상으로 불어난 가계부채, 늘어나지 않는 실질소득 등 3중고(重苦)에 시달리는 서민의 가계다. 부동산 시장도 냉각된 가운데 거의 유일한 유동자산인 주식에서까지 타격을 입는다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양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개인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증시 충격이 절정에 달했던 2008년 10월 말부터 올 3월까지 코스피 시장에서만 9조원 넘게 누적순매도를 기록했다. 그런데 4월부터 6월 15일까지 4조3369억원을 사들였다. 4월, 5월, 6월(15일까지) 평균 코스피는 2153, 2121, 2088포인트로 사상 최고순위 1~3위다.

반면 외국인들은 2008년 12월부터 올 4월까지 52조원을 사들였다. 코스피 정점이었던 4월 이후부터는 3조원 넘게 순매도하며 개인과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쌀 때 사들이기 시작해 값이 정점에 달했을 때 내다파는 외국인, 그리고 가장 비쌀 때야 사기 시작하는 개인이다. 개인이 외국인의 차익실현 물량을 받아내는 형국이다. 이는 2000년 이후 외국인과 개인의 매매 추이가 역(逆)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그리스 사태가 혼미 양상을 보이는 데다 미국 경기 후퇴 가능성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면서 16일 코스피지수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
그리스 사태가 혼미 양상을 보이는 데다 미국 경기 후퇴 가능성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면서 16일 코스피지수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

외국인보다 개인의 영향력이 더 큰 코스닥 시장에서도 개인들의 성적은 초라하다. 지난해 여름 이후 완만한 순매수를 유지하던 개인들은 올 4월부터 무려 4000억원 넘게 순매수했다. 그런데 4월 초 530포인트를 넘으며 연중 최고를 기록했던 코스닥지수는 한 달 반이 지난 6월 15일 현재 460선까지 13.2%나 추락했다.

개미들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것은 주가가 금융위기 전 전고점을 넘어선 데다, 일부 고액자산가들이 랩어카운트나 ‘차화정’ 등 개별종목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거두자 장밋빛 전망에 끌려 자연스레 증시에 끌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물가상승이 상당 부분 진행됐음에도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이 늦춰지면서 예금 등 안전자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것도 증시에 다시 뛰어든 원인이 됐다.

게다가 2월 조정을 거친 후 증권사들은 앞다퉈 증시 상승을 전망했고, 한창 인기가 높은 투자자문사 대표들은 전국을 돌며 주식투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아 증권사 보고서는 단기적으로 주가가 많이 오를 여지가 높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주식투자 적기라고 역설하던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스스로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현재 코스피는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중국의 경기 우려가 크고, 코스닥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투명성 문제와 경기둔화 국면에서의 상대적 경쟁력 약화가 걸림돌이다. 홍기석 삼성운용 팀장은 “경제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주가지수에 베팅하기보다는 개별 유망종목에 접근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수급이 막혀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물론 좀 비싼 값에 샀더라도 10년 이상 장기 투자한다면 손해볼 확률은 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일반 가계의 경우 장기 투자할 여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집계 올 1분기 가계부채는 1006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래도 금융부채보다 순금융자산이 많다고 하지만, 금융자산이 많은 것은 서민보다는 고액자산가 때문이다. 1억~2억원 수준의 주택담보대출을 가진 서민 가운데, 그만큼의 예금이나 금융상품을 가진 경우는 많지 않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은 최소 한두 차례는 불가피해 보이며, 시장금리를 하향안정화시켜 주던 외국인들의 국내 채권 매수도 작년만 못하다. 변동금리가 대부분이고 원금은 놔둔 채 이자만 갚는 경우가 많은 게 국내 가계 빚의 특징이다. 이자부담이 높아지는데도 실질소득이 늘지 않으면 다시 빚을 내든지, 현금화가 쉬운 자산부터 내다팔 수밖에 없다.

이원기 PCA운용 대표는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서 그나마 물가상승률을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증시에 서민들이 투자하지 않는다면 충분한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m.com


kyhong@heraldcorp.com